230여년 전의 기록
강렬한 붓터치 사이로 불그스런 색채들이 조화롭게 펼쳐진다. 멀리서 바라보면 고요함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거친 파도이다. 그 파도 사이로 화물선 하나가 위태롭게 떠 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가까이에 보이는 사람들의 팔과 다리이다. 쇠사슬에 묶인 다리 하나가 애처롭다. 이제 곧 가라앉을 쇠사슬이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람이 죽어감을 알게 된 이후에는 석양으로 보이던 빨간 빛이 갑자기 피로 물든다. 검게 보이는 거친 파도는 이 화물선을 심판하려는 신의 노여움이 아닐까? 멀리서 느꼈던 고요함이 분노와 공포로 바뀐다. 갑자기 불쾌해진다. 코 끝에서 피 냄새가 진동하는 듯 하다.
미국 보스턴 미술관(Boston fine art of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이 작품은 흔히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노예선(The Slave Ship)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제는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를 바다에 던지는 노예 상인들 – 폭풍우의 내습, 1840>이다. 제목을 알게 된 후에는 그 죽어가는 사람들이 노예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혹시 노예라서 그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을까? 적어도 터너는 그렇지 않았다. 터너는 이 참혹했던 순간을 격정적으로 재연했다.
1830년대 후반 여전히 반인륜적인 노예제가 성행하고 있다. 대영제국은 1833년 노예제를 폐지하는데 성공했지만, 스페인 제국과 미국은 이를 지속한다. 노예제의 반인륜적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1840년 런던에서는 국제회담까지 개최된다. 터너는 노예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50여년전의 추악한 사건을 재연하기로 한다.
1781년, 영국의 노예선 종(Zong)호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쓸 흑인들을 잡아 자메이카로 항해하던 중이었다. 콜링우드 선장은 욕심을 부렸다. 배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보다 많은 노예를 잡은 탓이다. 아마 선장은 본국에서 얻게 될 이익을 생각하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7명의 선원과 60여명의 노예들이 병에 걸려 죽어가기 시작했다. 험해지는 날씨는 선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때 선장은 고민에 빠진다. 병에 걸려 죽은 노예들은 보상받지 못하지만, 항해 도중 실종되거나 바다에 빠진 노예들은 보험회사에서 배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장은 갑판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바다에 버릴 병든 노예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첫째날 54명의 노예를, 둘째날 42명, 마지막 날 26명의 노예를 바다에 빠트렸다. 이 살육적인 광경을 목격하던 다른 10명의 노예들은 스스로 배에서 뛰어내리며 일순간의 평안함을 느꼈다. 그렇게 132명의 노예가 죽어갔다. 이 사건은 양심 있는 영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그리고 노예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키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선장은 어땠을까? 보험회사는 선장이 고의로 노예를 바다에 빠트렸다며 처음에는 지급을 거부했다. 하지만 법원은 선장의 선택은 불가피 했다며 선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과적으로 선장은 보험회사로부터 노예 1인당 30파운드(현재 가치로는 약 1,886파운드이며 원화로는 약 340여만원)를 보상받았다. 갑자기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 바에야 노예를 바다에 빠트려 보상을 받으려는 선장의 행위는 지극히 합리적으로 변모했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당시 법률을 활용한 콜링우드 선장의 합리적 선택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