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지는 본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 틀을 강요하거나 빼앗는 것은 분명 ‘양심의 자유’에 어긋난다.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을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국가의 폭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규정될 수 잇다. 용산 참사나 쌍용 자동차 진압 등 국가 폭력이 얼마든지 이용될 수 있고, 그것 자체가 국가를 보존하기 위한 지상 과제처럼 여기는 이들을 보자면 홉스의 ‘국가주의’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 하다.
민주화 시대에 구 시대의 산물인 ‘국가주의’가 올바르냐는 논의는 차치하자. 이왕 ‘국가주의’로 세상을 바라보기로 결정했다면, ‘국가주의’를 움직이는 현실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 홉스의 ‘국가주의’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규정해준다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세상을 운영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뒤져봤다.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면 권모술수니, 목적을 위해 도덕, 윤리 의식을 떨쳐버린 비도덕적 술수로 여겨지나 이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마키아벨리가 당시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고 부패를 비난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교회 측의 입장이 반영된 면이 크다.
마키아벨리에게 한 번 물어보자. 국가주의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줄 수 있을까? 아래 인용문은 군주는 ‘리더’로 백성은 ‘국민’으로 바꾸었을 뿐 내용은 그대로이다.
“리더에게 가장 훌륭한 성벽은 국민들의 원성을 사지 않는 것입니다. 리더가 외부 세력보다 국민을 더 두려워하는 경우라면 성벽을 쌓아야겠지만, 국민보다 외부세력을 더 두려워하는 경우라면 성벽을 쌓아서는 안됩니다.”
“모든 가혹 행위는 단번에 해치워 연일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만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용이합니다. 폭력은 단번에 실행해야 합니다. 반면, 은혜는 조금씩 천천히 베풀어야 국민들이 그 기쁨을 더 오래 느낄 수 있습니다.”
“리더는 국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도록 행동하면서,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미움을 받지는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미움을 사는 일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리더는 국민들에게 되도록 자비롭고 신의가 있으며, 너그럽고 솔직하고 신앙심이 깊은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물론 실제로도 그러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리더가 국민들의 경멸을 받는 것은 변덕과 경박함, 그리고 나약함과 비겁함, 결단력이 없는 모습을 보였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특히 이러한 부분을 경계해야 하며 근엄함과 용기, 진지함과 강인함이 몸에 베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해를 입힐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에게 뜻밖의 호의를 받으면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더 깊은 은혜를 느낍니다.”
“용병에 의존하여 나라를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리더는 절대로 안정된 국정을 펼칠 수 없습니다. 용병은 분열되어 있고, 야심만만하며, 기강이 문란하고 충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용주인 리더를 공격하거나, 리더의 뜻을 거스르며 다른 이들을 압박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몰두하는 부류들입니다.”
“신중한 리더라면 인색하다는 비난을 듣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합니다. 극도로 인색하게 군 결과 국고가 튼튼해져 자국의 힘으로 적과 맞설 수 있고, 국민들에게 세금 부담을 주지 않고도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궁극적으로 그 리더는 매우 존경스럽다는 평판을 받게 됩니다.”
“리더는 마음을 열고 끊임없이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본인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지는 조언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리더는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민심을 얻을 만한 일은 본인이 직접 해야 합니다.”
“어디에서나 스스로를 선하게 보이려고 하다 보면 반드시 악인의 무리들에게 파멸 당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려는 리더는 선하기만 해서도 안 되며, 필요에 따라서는 악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