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에 리테일매거진(http://www.retailing.co.kr)에 기고한 글입니다.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태국 유통시장은 한국 유통 기업들에게 기회의 땅이다. 현지 전문 유통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활용해 아직 초기 단계인 온라인쇼핑몰이나 홈쇼핑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오프시장 이미 포화, 뉴 채널로 진입기회 노려라

‘여행자의 천국’이라 불리는 태국은 다양한 전통시장을 체험할 수 있는 재래시장의 향연장이다. 방콕 최대의 ‘짜투짝 주말 시장’이 큰 규모를 자랑하며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또 방콕 근교로 조금만 나가 보면 수상 보트를 타며 다른 보트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을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수상 시장이 있다. 기차길 주위로 아슬아슬하게 펼쳐져 있는 ‘메끌렁 시장’에서 기차가 지나갈 때 재빨리 천막을 걷어내는 상인들의 손길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태국 시장을 옛 ‘장터’ 이미지를 가진 재래시장으로만 판단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최근 방콕은 ‘세련된 쇼퍼홀릭들의 쇼핑 천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방콕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센트럴 월드’는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복합쇼핑몰이다. 이곳은 2000년대 초반 센트럴그룹이 옛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인수한 후 리노베이션을 거쳐 완성한 쇼핑몰이다. 바로 옆에는 동남아 최대 명품 백화점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시암 파라곤’이 자리잡고 있다. 길 건너 ‘게리손 플라자’ 쇼핑몰과 함께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까르티에,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들이 줄지어 쇼핑객들을 유혹한다. ‘시암 파라곤’이 위치한 ‘시암 BTS’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플런칫 BTS’ 역에는 또 다른 럭셔리 쇼핑몰인 ‘센트럴 엠버시’가 개장할 예정이고, ‘프롱폼 BTS’ 근처의 ‘엠포리엄 백화점’은 이미 태국의 중상류층 및 일본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명물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태국은 방콕을 중심으로 명품 쇼핑몰뿐 아니라 편의점, 아웃렛, 면세점 등 모든 유통 채널이 다각도로 발달한 전진 기지다.

태국 유통시장의 현 주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롯데, 신세계, 현대그룹에 비견되는 태국의 유통 강자인 CP그룹과 센트럴그룹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두 그룹의 최신 동향은 태국 유통시장의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 기업들에게 태국 유통시장 진입 기회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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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uromonitor

유통시장 규모, 한국의 3분의 1 수준

태국의 유통시장은 2012년 기준 약 790억 달러 수준이다. 한국이 약 300조 원 규모임을 감안할 때, 태국의 유통시장은 한국의 3분의 1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아직까지는 점포형 채널이 96%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온라인 및 홈쇼핑 등 무점포형 채널은 5% 미만에 불과하다.

과거 5년간 매년 약 5% 성장세를 유지한 태국 유통시장은 홍수 및 정치적 불안정 등 일시적 외부 환경 악화에도 불구하고 향후에도 현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업률이 낮은 데다 경제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며, 그 결과 중산층 비중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기준 태국 실업률은 0.7% 수준으로 매우 낮은 편이며, 베트남• 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지니 계수도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태국 내 중산층 기준으로 삼고 있는 연간 가처분 소득 1만 달러 이상인 가구 수도 2007년대비 2012년 기준 15.3%P나 증가했다.

한편, 최근 인터넷 사용자 수 증가와 높은 SNS 활용률은 향후 태국의 무점포형 유통채널의 성장을 보다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 기준 인터넷 보급률은 27% 수준에 불과하지만, 2013년 기준 약 50% 수준으로 성장했고 향후에도 이 성장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마스터카드에서 2012년 말 태국을 포함한 14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객들의 온라인 쇼핑 의향이 동남아 국가 중 싱가포르 다음으로 높을 뿐 아니라 스마트폰 구매 경험도 1,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높았다. 방콕은 전 세계에서 페이스북 이용률이 가장 높을 만큼 SNS에 대한 활용도도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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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유통 가문: CP 그룹과 센트럴그룹

태국의 유통시장을 논하면서 CP그룹과 센트럴그룹을 빼놓을 수 없다. 이 2개 그룹이 백화점, 편의점, 대형마트 등 주요 유통 포맷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 아시아(Forbes Asia)에서 발표한 태국 갑부 1위와 2위 역시 유통을 핵심 사업 영역으로 보유하고 있는 CP그룹과 센트럴그룹이다.

2013년 기준 태국 최대 갑부는 CP그룹의 다닌 체라와논(Dhanin Chearavanont) 회장과 그 가족이다. 2010년 이래 4년 연속 태국 최대 갑부로, 2013년 126억 달러를 보유했다고 알려진 한국의 이건희 회장과 비슷한 규모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다닌 회장의 부친은 중국 광동성 태생으로 처음 태국으로 건너와 종묘를 중심으로 사료, 농장, 곡물 무역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다닌 회장은 뛰어난 사업 감각을 인정 받아 30세부터 회장으로 발탁되어 현 CP그룹을 발전시켰다.

CP그룹은 1921년 창업되었으며, 현재 약 465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태국 GDP가 약 3,700억 달러 수준임을 감안할 때 전체 GDP의 10%가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다양한 영역에 사업을 수행 중이며, 가장 큰 사업영역 가운데 하나가 세븐일레븐 편의점이다. CP그룹은 7천 개가 넘는 세븐일레븐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중 절반 이상이 방콕에 집중돼 있다. 단일 국가로는 일본, 미국 다음으로 세븐일레븐이 가장 많다. CP그룹은 세븐일레븐 외에도 테스코와 파트너십을 통해 대형마트인 ‘테스코-로터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가 할인 매장인 ‘시암마크로’도 보유하고 있다.

태국 두 번째 갑부는 123억 달러를 보유한 센트럴그룹의 치랏티왓(Chirathivat) 가문이다. 현재 회장이자 창업주인 티앙 치랏티왓(Tiang Chirathivat) 회장은 중국 하이난 출신으로 1927년 태국에 정착한 이후 1947년 현재의 센트럴그룹을 창업했다.

센트럴그룹은 센트럴 플라자 외에도 태국의 중하류층을 겨냥한 로빈슨 백화점, 패밀리마트 편의점, 톱스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고, 카테고리 전문점인 파워바이(전자제품), 슈퍼스포츠(스포츠용품), 오피스메이트(사무용품)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대표적 드럭스토어인 왓슨스, 마크&스펜서를 라이선스 획득을 통해 독점 운영하고 있다.

CP그룹과 센트럴그룹은 편의점,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등 점포형 유통채널 대부분을 직•간접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백화점은 센트럴그룹이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할 정도로 거의 독점적이며, 그 뒤를 이어 더몰 그룹(The Mall Group)과 씨암피왓(Siam Piwat) 등이 뒤따르고 있다. 편의점 시장은 CP그룹의 세븐일레븐이 7천여 개가 넘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센트럴그룹이 1천여 개의 패밀리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하이퍼마켓은 CP그룹의 테스코-로터스와 센트럴그룹의 빅C(Big C)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대표적인 드럭스토어 브랜드인 왓슨스는 센트럴그룹이 28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위 업체인 부츠(Boots)가 19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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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유통의 새로운 격전지, 신규 채널

두 개 유통 공룡들의 최근 고민은 신규 채널 진입이다. 기존 점포형 채널이 두 개 그룹을 중심으로 독과점화됐고, 경쟁까지 치열해지면서 더 이상 과거의 고성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현재 태국의 하이퍼마켓, 슈퍼마켓, 백화점 등은 기존 업체들 간 경쟁이 치열해 신규 진입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2개 그룹은 홈쇼핑과 면세점이라는 신규 채널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기존 점포형 채널의 경우, 유통에 사업을 집중하고 있는 센트럴그룹이 다소 우세했다면, 홈쇼핑에서는 CP그룹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CP그룹은 태국 내 더몰 그룹, 한국의 GS홈쇼핑과 손을 잡고 2011년 10월 홈쇼핑 전용 채널인 ‘트루 셀렉트(True Select)’를 개국했으며, 2012년 약 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뒤를 이어 한국의 CJ오쇼핑이 태국 현지 엔터테인먼트 그룹인 GMM과 손을 잡고 2012년 6월 ‘GMM CJ오쇼핑’을 개국했다.

홈쇼핑 경쟁에 다소 뒤처진 센트럴그룹은 일본의 1위 홈쇼핑 사업자인 ‘스미토모’와 손을 잡고 ‘숍 글로벌(SHOP Global)’ 개국을 준비 중이다. 태국 홈쇼핑 시장은 이제 한국 홈쇼핑 사업자들의 자존심을 건 격전지가 되었다.

면세 시장 경우 아직 두 개 그룹의 가시화된 성과는 없지만, 공항과 시내 면세를 중심으로 태국 유통 사업자들이 경쟁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면세 시장은 센트럴그룹이 먼저 참여하기 시작했다. 비록 입찰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2012년 방콕 돈무앙 공항 입찰에 참여했으며, 아직까지 가시화되지는 않았으나, 2013년 초 센트럴그룹과 롯데면세점이 합작으로 시내 면세점에 진출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반면, 편의점과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한 CP그룹은 최근 짜오프라야 강변 상업 지구 개발에 참여하면서 백화점과 같은 유통 형태도 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국 정부 당국의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경우, 시내면세까지 진출하려 한다는 후문이다.

한국 기업들의 진입 기회 충분하다

한국 유통 사업자들에게 태국은 기회의 땅이다. 유통시장이 안정적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고, 태국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영역에 대해서는 외국 사업자들과 적극적으로 파트너십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홈쇼핑, 면세점 등 신규 유통채널 또는 전문 카테고리몰에 대해 태국 유통 강자들은 적극적으로 JV를 맺거나 또는 맺으려 하고 있다. 비단 앞서 언급한 두 개 유통 대기업뿐 아니라 시암 파라곤을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 더몰 그룹이나 씨암피왓, 그리고 소형 상권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씨암 퓨처 디벨롭먼트(Siam Future Development)와 같은 기업들도 충분히 파트너사로 고려해볼 수 있다.

나아가 무선통신 가입자수가 120%를 초과하면서 적극적으로 사업 기회를 물색하고 있는 AIS(인터치 그룹)나 트루(True, CP그룹)도 영역은 다르지만 역량 시너지 차원에서 충분히 접근 가능하다.

한국 유통 기업으로는 GS홈쇼핑과 CJ오쇼핑이 이미 진출했으나, 홈쇼핑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인 점을 고려하면, 진출하지 않은 다른 한국 홈쇼핑 사업자에게도 충분한 사업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쇼핑몰 역시 추가적으로 고려 가능한 사업 기회이다. 태국 온라인 시장은 현재 이베이(eBay) 등 외국계 업체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으나,  AIS  등 기존 통신 사업자와 현지 유통 사업자를 중심으로 온라인쇼핑몰 사업을 키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 중이다. 여기에 한국 유통 사업자들의 인터넷 쇼핑몰 운영 노하우는 분명 태국 사업자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대목이다.

태국 유통시장의 기회가 일부 소수 한국 대기업 유통업체에게 국한된다면,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수출의 기회가 훨씬 크다.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면서 에뛰드, 스킨푸드 등의 한국 화장품은 이미 태국의 현지 사업자와 독점 계약을 맺고 판매 중이다. 닥터자르트(Dr. Jart) 등 한국 화장품 업체들도 별도 매장을 열고 판매하고 있다.

한국 홈쇼핑 사업자들의 진출로 한국 제조기업들에게도 판로가 열리고 있다. 실제로 트루 셀렉트에서 2013년 상반기 기준 판매율 2위는 라네즈 BB쿠션 세트, 4위는 휴롬 믹서기로 한국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제품들이 태국 시장에서도 잘 팔리고 있다.

장기적으로 태국 유통시장은 독과점으로 구성된 전통적 유통 포맷 외에 온라인, 홈쇼핑 및 면세 등 신규 채널을 중심으로 한 기회의 문이 더욱 넓어질 것이라 판단된다. 이러한 신규 채널 진입 시에는 태국 유통시장의 전통 강자인 CP그룹 및 센트럴그룹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더몰 그룹과 같이 기존 유통시장에서 상대적 약자이기는 하나 시장 확대에 관심이 많은 유통 사업자나 통신 사업자를 중심으로 한 파트너십 기회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