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웅장함

첫 대면은 압도적이다. MBA 1학년 시절 처음 방문한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만난 리베라의 벽화는 한 마디로 경외로웠다. 미술관 건물 중심에 있는 리베라 광장은 사방이 화려한 색깔의 벽화로 가득차 있다. 조립 라인 노동자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눈에 지금이라도 다시 살아 움직일 듯 하다. 비서와 회계원들은 타자기에 머리를 묻고 열심히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다. 한켠에는 포드 자동차의 창업주인 헨리 포드가 그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있다.

이 벽화에 빠져있노라면 1930년대로 돌아가 포드 자동차 회사의 한 구성원이 된 듯한 느낌이다. 생생한 리베라의 그림은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그 이면의 의미는 그리 단순치 않아 보인다. 돈을 지불했을 헨리 포드가 주인공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중심이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불가능했겠지만 벽화에서는 다양한 인종들과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가 한데 어울려 모두가 조화롭게 일을 즐기고 있다.

이 벽화는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의 작품이다. 멕시코의 4대 화가 중 한 명이며, 가장 멕시코적인 화가로 프레스코화에 관해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통과 여성적 그림의 거장인 프리라 칼로(Frida Kahlo, 1907-1954)의 바람둥이 남편으로도 유명한 리베라는 이 벽화의 웅장함으로 그에 대한 모든 편견을 뛰어넘어 버리게 했다.

왜 리베라일까?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이 벽화가 그려진 1930년대 디트로이트는 그야말로 현대 자본주의의 심장이었다. 이런 상징적인 곳에 어떻게 사회주의자인 리베라의 그림이 그려질 수 있었을까? 그것도 자본가가 중심이 아니라 노동자가 주인공이다. 이 벽화가 그려진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1929년 경제 대공황 당시 미국 경제는 추락 일로에 있었다.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한 사람들은 융자를 갚을 길이 없었고, 집세를 낼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은 구호 물자로 연명했다. 미국 전역이 불황에 허덕였다. 당시 공업 도시였던 디트로이는 그 여파가 제일 컸다. 디트로이트에 자리 잡고 있던 자동차 업계는 고용과 임금을 절반으로 줄일 정도였다.

1932년 사람들의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그 해 3월 7일, 오천여명의 노동자가 포드 자동차에서 해고되자, 이들은 실업수당 지급을 주장하며 공장으로 행진한다. 해고 근로자들이 비무장 시위를 벌이며 포드 자동차 회사 루지 센터 리버루지 공장에 도착한 순간,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경찰들이 근로자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노동자 5명이 희생됐고, 장례식에는 6,000여명이 참석해 세계 노동자의 노래를 부르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공산당 기관지는 헨리 포드의 아들인 에드셀 포드(Edsel Ford, 1893-1943)가 학살을 방관했다고 비난했다.

막대한 자본을 보유한 포드사와 가진 것 없는 노동자들의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없었을까? 이에 에드셀 포드는 멕시코 화가였던 리베라에게 디트로이트의 경제는 계급 투쟁이 아닌 상호 협력에 의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로 그림을 그려줄 것을 부탁한다. 리베라는 당시 공산주의자였으며 계급 평등을 주장했다. 사실 리베라가 바라본 포드 자동차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였을 것이다. 1933년 벽화가 공개되자 시의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디트로이트 정신을 조롱하는 공산당 선전 벽화라 주장했다.*

하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명작은 논란을 뛰어넘는다. 이 벽화는 지금까지도 디트로이트로 대변되는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며 자부심이다. 2011년 슈퍼볼 광고로 화제가 되었던 크라임슬러 광고에서도 리베라의 역동적인 벽화는 자동차 공업 도시로서의 디트로이트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산업 자본주의의 상징

리베라가 이 벽화를 그리기 위해 처음 보았던 포드 공장의 모습은 아마도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스>에서 그렸던 노동자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볼트를 조여라! 볼트를 조여라!” 로 시작되는 이 영화에서는 부속화된 인간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가를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헨리 포드가 고안해 낸 대량 생산 체제가 없었다면 현대인의 풍요로운 소비 생활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리베라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역설을 그의 이상 속에서 표현해 냈다. 나아가 그는 모두가 조화스럽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듯 하다.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이들처럼 자본가, 노동자, 그리고 흑인, 백인과 여자와 아이들 모두가 한 데 어울려져 같이 땀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MBA 시절 디트로이트 미술관은 일종의 안식처였다. 리베라의 벽화를 보면서 걸작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이 벽화 자체가 산업 자본주의의 근본적 속성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난 운이 좋게도 현대 경영학의 시작을 상징하는 그 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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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Niall Ferguson, The Ascent of Money (The Penguin Press, 2008), pp 24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