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에 가린 진심

마리오(Mario)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지역 갱 단원이었다. 그것을 상징하듯 얼굴 부위를 제외하고는 그의 온 몸은 문신으로 덥혀 있다. 하지만 그는 상냥한 청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을 다잡고 살려고 노력하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다. 그는 총을 드는 대신 빗자루를 들고 자신의 과거를 청소하듯 건물을 청소한다.

마리오는 감옥을 출소한 이 후, 홈보이 인더스트리즈(Homeboy Industries)에서 그레고리 보일 신부(Fr. Greg. Boyle)를 도와주며 일을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보일 신부는 마리오를 한 대학 강연에 데리고 갔다. 보다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강연이 끝난 시점, 한 여성이 질문을 했다. 보통은 보일 신부에게 질문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 날 그 여성의 질문은 마리오에게 향했다.

“마리오, 이제 막 10대로 접어드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마리오는 긴장감에 몸이 굳은 상태로 쭈볏쭈볏 강단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질문은 이어졌다. “그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뭐라고 충고해주실 건가요?”

마리오는 겨우 입을 떼며, 답을 했다. “난 제 자식들에게 … 저처럼 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는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질문을 한 여성은 차분하게 그리고 상냥하게 말을 이어갔다. “제가 보기엔 무척이나 상냥하고 자상해 보이시는데, 전 오히려 당신 아이들이 마리오 당신처럼 됐으면 좋겠어요.”

마리오는 그 말에 충격을 먹은 듯 멍해졌다. 그리고 눈물을 감추려 얼굴을 팔에 묻었다. 하지만 다른 청중들은 그 여성의 말에 공감한 듯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마리오를 격려했다.

갱들의 아버지

보일 신부가 2012년 1월, 미시간 경영대학원에서 우리에게 해 준 이야기는 바로 수 많은 마리오의 이야기였다. 보일 신부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 당시 마리오는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박수를 치자 매우 놀란 듯 보였어요. 그 순간, 그 방안에는 바로 연대감이 가득 찼지요. 아마 마리오는 그 때 처음으로 그 연대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강단에 모습을 드러낸 보일 신부는 산타 할아버지처럼 인심 좋고 멋진 턱수염을 가진 인상 좋은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그가 들려준 수많은 마리오 이야기는 웃음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보일 신부는 예수회 소속 신부이다. 1980년대 처음으로 로스앤젤레스 동부 지역의 보일 하이트(Boyle Height) 지역으로 파견됐을 때 그는 조그만 성당에서 설교를 시작했다. 지역 이름과 보일 신부의 이름이 같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보일 신부는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매일 밤 걷기 시작했다. 수 많은 청년들이 골목 구석구석에서 냉담한 얼굴로 서 있는 것을 목격했다. 경찰은 보일 신부를 마약 거래 때문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오해했다. 하지만 아이나 청년들이 다쳐 병원에 입원하면, 보일 신부는 매번 그들을 방문했다.

보일 신부가 계속 밤마다 걷자 건강을 우려한 몇 몇 주민은 돈을 모아 자전거를 사주었다. 매일 밤 보일 신부는 주위를 돌며 젊은이들에게 무언의 말을 건냈다.

보일 신부가 그 지역에서 목격한 상황은 심각했다. 10대부터 얘들은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갱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갱 단원이 되어야 했다. 문제는 감옥에 갔다 온 청년들이 일할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일할 곳을 못 찾은 이들은 감옥을 다녀와도 다시 익숙한 길로 들어선다.

보일 신부는 그 때의 안타까움을 한숨과 함께 우리에게 전달했다.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시작

전직 갱들을 위한 충분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보일 신부는 직접 일자리를 만들기로 한다. 1992년 영화 제작자로부터 상당 규모의 기부를 받아, 작은 빵집을 인수하면서 홈보이 인더스트리즈(Homeboy Industries)를 설립했다. 2012년 현재 홈보이 인더스트리즈는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갱 단원 갱생 프로그램이다. 감옥에서 출소한 수 백 명의 갱 단원들을 고용하고, 이들을 일정 기간 훈련시킨 다음 다른 회사로 취업을 연결시켜 준다.

제과점에서 시작된 사업은 어느덧 카페, 실크스크린 샵 등으로 확장되었다. 이제는 로스엔젤레스 공항에도 홈보이 카페 & 베이커리(Homeboy Cafe & Bakery)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중에서도 보일 신부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사업은 바로 무료 문신 제거 사업이다. 특정 문신은 특정 갱 소속임을 표시해주고, 이는 서로 다른 갱 집단끼리 싸움을 유발시킨다. 따라서 문신 제거는 마음을 다잡은 갱원들이 갱생할 수 있는 필수 요소이다.

보일 신부는 이 때의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남들은 팔기 위해 빵을 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빵을 굽습니다. 그리고 일자리만 있다면, 사실 그것이 빵이 아니라도 상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일자리를 찾고 있는 수 많은 (예비) 일꾼들이 있으니까요.”

기적의 공간

보일 신부는 홈보이 인더스트리즈를 ‘기적의 공간’으로 생각한다. 재정적으로 어려워 위기 상황을 맞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위기는 계속되었고, 2010년은 사람들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하지만 그 때마다 기부자들이 나타났다. 월급날이 다가오는데 돈이 떨어져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하루는 누가 문 앞에 놓고 간 돈 뭉치를 발견하기도 했다. 2012년 기준 홈보이 인더스트리즈가 필요한 총 필요한 금액은 약 1,400만 달러 (약 160억원)이다. 이 중 약 8백만달러는 매년 수 많은 사람들의 기부로 충당하고 있다. 나머지 2백만달러는 정부 계약금으로 그리고 4백만 달러는 사업 수익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경기가 좋을 때는 홈보이 인더스트리즈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고용해줄 회사가 많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 악화로 일자리가 녹녹하지 않았다. 까닭에 고용 인원이 계속 늘어 2012년 2월 현재 380여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보일 신부는 경기가 안 좋더라도 일자리가 필요한 호미들을 위해 계속 숫자를 늘려갈 것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했다.

문제 해결의 열쇠, 연대감

보일 신부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연대감을 강조했다. 나와 다르고 남이라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보일 신부는 “이 세상의 문제는 우리가 같은 곳에 속하고 있음을 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테라사 수녀의 말을 인용하며, 생각을 조금만 바꾸기를 요청했다.

그는 호미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죽을 때 무덤에 직접 묻는다. 그의 가슴에도 함께. 그가 처음 어린 호미를 묻은 것은 1988년이었다고 한다. 라파엘. 그는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듯 눈물을 훔치며 그 이름을 읊조렸다. 지금까지 많은 호미들을 그는 무덤에 묻었고 그리고 가슴에 묻었다. 보일 신부가 호미들을 자신의 친자식으로 생각하듯, 가족 같은 연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보일 신부는 다시 한번 연대감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연대감이 없다면 정의는 없습니다. 정의가 없다면 평화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