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반대하는 다수를 어떻게 설득해나갈 것인지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영화이다. 11명의 배심원들은 18세 유색인종의 살인사건 혐의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유죄’를 선언하려 한다. 하지만 ‘8번’ 배심원은 이에 합리적 의심을 품고 차례차례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해 나간다. 그의 설득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8번 배심원으로부터 5가지 설득 전략을 배워보자.
삐거덕거리는 창문
방안이 후덥지근한 열기로 가득 찼다.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선풍기를 켜지만 작동하지 않는다. 하나 둘 사람들이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기 시작한다. 삐거덕거리며 3개의 창문이 겨우 열렸다. 하지만 방안의 열기는 가실지 몰랐다. 오늘은 야구 게임이 있는 날이다. 어떤 이는 빨리 돌아가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
12명의 배심원이 방으로 들어서자, 문은 닫히고 밖에서 잠기는 소리가 철컥 났다. 이들 배심원들은 의견이 만장일치가 되기 전까지 저 문을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방안에 모인 대부분 배심원들은 빨리 끝날 것이라 기대했다. 너무나 뻔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빈민가에 사는 18세 소년, 전과 5범, 그것도 유색 인종.
빨리 끝내고 야구를 볼 생각에 설렌 7번 배심원이 거수로 투표하자고 제안한다. “유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손을 드세요?”라고 배심원장이 요청하자, 5명의 배심원이 확신을 갖고 손을 든다. 하나 둘 망설이다가 나머지 6명도 손을 들었다. 하지만 단, 한 명, 8번 배심원은 손을 들지 않았다.
“11명은 유죄이고 1명은 무죄이군요.”라고 배심원장이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모두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8번 배심원은 “대화를 해봅시다”며 자신의 의견을 하나씩 밝히기 시작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까? 제일 손쉬운 방법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명령하는 것이다. “야! 일단 시키는 대로 일단 해봐!”라는 상사의 외침은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방에 있는 배심원은 모두가 평등한 관계이다. 배심원장 역시 형식적 지위일 뿐, 그 어느 누구도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은 피의자 최종 심문이 끝나고 방안으로 모여드는 배심원들의 얼굴을 비추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1957년에 만들어진 흑백 영화이다. 1시간 30분 동안 한 공간에서 배심원들의 대화만 비출 뿐, 현대인들의 관심을 끌만한 특수효과는 전혀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비록 5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결코 가볍게 볼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혼자 유죄가 아니라고 외치는 8번 배심원이 다른 11명의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다수를 설득하기 위해 보여주는 다섯 가지 설득 전략은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전략 1: 공개 투표와 비공개 투표 활용
처음 공개 투표를 했을 때, 6명의 배심원은 유죄에 망설이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다수가 유죄라고 생각하는 것을 확인하고, 하나 둘 손을 들자 다른 이들도 부담 없이 손을 들었다. 공개 투표는 의견이 애매모호한 이들을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8번 배심원은 그런 압박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을 만한 용기를 보여준다.
8번 배심원만 손을 들지 않자, 야구 경기 시간이 걱정된 7번 배심원이 “무슨 얘기를 하자는 겁니까? 이미 11명이나 유죄라고 생각하는데.”라며 다그쳤다. 하지만 8번 배심원은 위축되거나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한다. “전부 유죄라고 하니 나까지 손을 들면 이 애는 그냥 죽을 것 아닙니까?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요. 한 시간만 의논하죠. 야구는 8시에 시작하잖아요.”라며 오히려 7번 배심원을 구슬렸다.
5분이 아닌 한 시간만 더 얘기하자는 의견에 일부 배심원은 귀를 기울이는 듯 보였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 한 시간은 분명히 명분 있는 일이다. 나아가 8번 배심원은 “이 애는 평생 학대 받고 살았어요. 가난하게 태어나 9살 때 엄마가 죽고, 아버지가 사기로 감옥에 가자 고아원에서 컸죠. 분명 거칠고 반항적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줄 아세요? 이 애는 매일 맞고 자랐거든요.”라며 “18년간 고생하고 살았는데, 몇 마디 정도는 더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라며 배심원들에게 조금 더 생각해보자는 제안을 한다.
결국 한 명씩 돌아가면서 8번 배심원에게 왜 자신이 유죄라고 생각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무언가 빈틈이 있고, 편견에 사로잡힌 듯한 느낌이다. 가난한 빈민가의 출신과 유색인종이라는 색깔이 덧씌워져 실제 범죄 사실 여부와 달리 이미 유죄를 내린 듯 하다.
다른 배심원들도 증거에 다소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까? 이번에는 8번 배심원이 과감하게 비밀 투표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여전히 11명이 유죄라고 생각할 때는 자신 역시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얘기한다. 다른 사람들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비밀 투표 결과는 어땠을까? 여전히 10명은 유죄라고 투표했지만, 1명은 마음을 바꿔 무죄라고 투표했다.
8번 배심원은 비밀투표의 장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하다. 비밀투표는 공개투표가 개개인에게 주는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롭다. 따라서 소신 있게 의견을 밝힐 수 있다. 게다가 개개인에게 보다 많은 책임감을 부여한다. 다수 속의 익명에서 탈피해, 정말 이 소년이 유죄라고 생각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아마도 이 전략이 먹힌 듯 했다. 11명 중에 한 명이 의견을 바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8번 배심원은 토론을 진행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증거에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 다시 공개투표를 하자고 제안할 만큼 전략적이었다. 그리고 이 전략은 또다시 먹힌다. 다른 두 명의 배심원이 무죄로 의견을 바꿨기 때문이다.

전략 2: 유리한 핵심 질문 형성
사람들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는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8번 배심원이 “이 소년이 무죄입니까? 확실합니까?”라고 물어봤다면, 다른 배심원들은 대부분 “무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라고 답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죄라고 보기 어려운 것’과 ‘유죄인 것’은 동일하지 않다. ‘무죄’와 ‘유죄’ 사이에는 ‘확실하지 않음’이라는 중간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죄로 의견을 모으려는 이들은 “이 소년이 무죄입니까? 확실합니까?”라고 물을 것이고, 반대쪽 이들은 “이 소년이 유죄입니까? 확실합니까?”라고 질문을 바꿀 것이다. 그만큼 논의의 틀이 되는 질문은 중요하다.
따라서 8번 배심원의 전략 중 하나는 다른 배심원들이 대답해야 할 질문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 소년은 유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하지 않습니다.”라고 언급하면서 다른 배심원들에게 되묻는다. “유죄라고 확신하시나요?” 대다수의 증거를 받아 들여 유죄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한 두 개의 증거가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유죄라고 확신하시나요?”라는 질문에 분명 망설일 것이다. 바로 이 점을 8번 배심원이 노린 것이다.
무죄로 의견을 바꾼 2번 배심원은 이렇게 얘기한다. “사실 유죄라고 생각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소년의 키는 173cm이고 아버지의 키는 185cm인데 칼이 위에서 아래로 찔렸다는 점입니다.”라며 애써 묻어왔던 자신의 의심을 털어놓는다. 이 의견을 털어놓자 그가 충분히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었음이 밝혀지고 다른 사람들도 여기에 영향을 받아 무죄로 의견을 수정한다.
전략 3: 차분한 감정 유지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하면서 8번 배심원이 보여준 감정은 차분하고 냉정했다. 절대 흥분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소신 있게 밝힌다.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고백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한다.
8번 배심원이 카리스마가 있고, 감정적인 상대를 대하는 방식은 무척 흥미롭다. 3번 배심원은 마지막까지 유죄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언변도 뛰어나고, 카리스마도 있어 초반에는 다들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듯한 분위기였다. 이 상황에서 8번 배심원은 3번 배심원을 마치 다윗이 힘이 센 골리앗을 대하듯 직접적인 충돌은 피했다. 대신 그는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듣고, 그 말을 상대의 말을 반박하기 위해 사용한다. 일종에 자기 덫을 놓는 셈이다.
예를 들어, 3번 배심원은 “죽여버리겠어!”라고 말을 했던 피의자의 말을 인용하며, 그 말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보통 이런 말은 함부로 뱉지 않으며, 따라서 피의자는 이런 말을 한 피의자는 유죄가 확실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8번 배심원의 설득에 하나 둘 무죄로 의견을 수정하자 마침내 3번 배심원은 화가 폭발한다. “그 동안 별꼴을 다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 빈민가 출신에 대한 연민 때문에 이야기를 지어내며 다른 사람들을 설득했을 지는 모르나 나한테는 안 통합니다. 그 애는 유죄요! 다 잡은 범인을 놓치게 생겼잖아.”라며 3번 배심원은 소리를 질렀다.
이에 8번 배심원은 “댁이 사형집행관이요? 직접 스위치를 누르시겠다? 불쌍한 인간, 스위치 누르는 기분이 어떨까 궁금하군. 어쩐지 처음부터 자기가 정의의 수호자인척 하더니 결국은 사적인 감정으로 이 애가 죽기를 바랬던거군.”라며 상대의 화를 의도적으로 돋군다. 그리고 “사디스트 같으니…… 쯧쯧”라며 마지막 일격을 가하자, 참지 못한 3번 배심원은 “이거 놔! 죽여버리겠어! 죽일거야!”라며 소리를 지른다. 8번 배심원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설마 정말로 날 죽이겠다는 뜻은 아니죠?”라고 물었다.
3번 배심원은 자기 스스로 덫에 걸린 셈이다. 3번 배심원이 애초 얘기한대로 이 말을 뱉은 피의자가 실행에 옮긴다는 것을 전제하면 자신 역시 살인자라는 의미이고, 만약 그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고백하면 결국 자신이 피의자를 유죄라고 생각하던 의심도 철회해야 한다.
전략 4: 친밀감 형성
친밀감 형성은 중요하다. 특히 평등한 관계에서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논리적 접근보다 공감대가 형성을 통해 개인적 친밀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까닭에 8번 배심원은 개개인에게 관심을 쏟으며 개인적 친밀감을 형성했다.
예를 들어, 2번 배심원이 화제를 돌리기 위해 “껌 드실 분 있으신가요?”라고 물었을 때, 2초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이 때 8번 배심원은 홀로 껌을 먹겠다고 대답한다. 진짜 껌을 먹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상대의 무안함을 덜어주면서 역으로 개인적 친밀감을 형성한 것이다. 이것은 배심원장에게 보여준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배심원장이 논리적으로 곤경에 처하고 사람들에게 공격 당하자, 8번 배심원은 그 순간 공개 투표를 제안하면서 배심원장을 곤경에서 빠져 나오게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쉬는 시간에 약간은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던 배심원장이 8번 배심원에게 다가와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8번 배심원은 의견이 애매모호한 이들에게는 직접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들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함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을 통해 스스로 올바른 답변을 하도록 유도하려고 한 것이다. 이 과정은 개개인이 스스로 똑똑하다고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의견을 수정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남이 낸 의견에 동화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답변한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한 것이기에 설득 작업이 더욱 견고해진다.
또한, 8번 배심원은 적극적으로 다른 이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아래층 노인의 목격을 증명하기 위해, 침실부터 문까지에 해당하는 거리를 직접 걸어보는가 하면, 2번 배심원에게 직접 시간을 재보라고 요청한다. 말수가 없는 12번 배심원을 직접 지목해 의견을 묻기도 했다. 경험을 동원해 최대한 상대방 눈 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고, 이 과정에서 각 배심원들의 경험을 물으며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전략 5: 약한 고리에 집중
마지막으로 8번 배심원이 보여준 전략은 약한 고리를 노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자세는 먼저 충분히 듣는 것이었다. 그가 핵심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명제는 ‘피의자가 유죄라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반대로 ‘유죄라고 확신하는 증거’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상대방의 논리를 충분히 듣는 것은 특히 소수가 다수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다수는 유사한 결론을 가지며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따라서 다수에 속한 것에 안정감을 느끼며, ‘다름’보다 ‘같음’에 집중하며 결속력을 다진다. 하지만 개개인을 나누어 ‘같음’보다 ‘다름’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이 것만으로도 다수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나아가 어떤 사람들을 먼저 설득해야 하는지 약한 고리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 배심원 8번이 유죄 반대 의견을 표명하자, 개별적으로 자신들이 왜 유죄라고 생각하는지 밝힌다. 이 때 5번 배심원은 의견에 자신이 없는지 특별히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2번 배심원 역시 자신이 매우 없는 듯한 표정으로 이유를 얼버무렸다.
이런 까닭에 8번 배심원은 2번과 5번 배심원을 우선적으로 공략한다. 2번과 5번 배심원이 생각하는 증거들을 하나씩 파고들며, 다른 해석 역시 가능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때 8번 배심원은 결코 강하게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단지 2번과 5번 배심원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합리적 의문을 던진 것뿐이다.
8번 배심원은 사람들 사이의 약한 고리에도 집중했지만, 개개인의 주장에서도 약한 증거에 우선적으로 집중했다. 근거들 중 깨지기 쉬운 약한 고리를 우선적으로 하나씩 반박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예를 들어, 피의자가 사용했던 칼이 빈민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음을 증명하거나 아래층 노인이 피의자가 외친 “죽여버리겠어!”라는 말을 듣기에는 기차 소리가 너무 컸다는 점을 하나씩 증명하면서 우선적으로 약한 고리들을 끊어 나갔다.
마침내 8번 배심원의 노력은 결실을 거두었다. 오후 6시 25분경, 약 1시간여 동안 토론을 거치면서 방안에 있는 모든 배심원이 무죄로 자신의 의견을 수정했다. 그 방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피의자가 무죄라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토론 과정 속에서 다들 피의자가 유죄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8번 배심원의 차분하고 끈질긴 설득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