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카리오는 영화를 보는 내내 주먹에 땀을 쥐게 한다. 관객들은 장면 하나하나에 몰입하면서 영화가 이끄는대로 끌려갈 수 밖에 없다. 음악, 플롯, 영상이 자연스럽게 어울러지면서, ‘이런 게 바로 내내 멱살잡고 끌고가는 영화’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 평이 매우 와닿은 영화이기도 하다.

1.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배경 음악에서 온다. 질긴 현악기 음색이 현실의 무게를 온전하게 전한다. 배경 음악만 온전히 떼어 놓으면 어떤 공간이든 그 공간을 긴박하게 만든다. 아침 출근길이든 나들이 길이든 시카리오의 날카로운 현음악은 그 공간을 새로운 서스펜스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2.
이 영화는 겉으로 명확해 보이는 선과 악의 구분이 전체 틀에서 얼마나 모호한가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악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을 역설적으로 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악의 편에 서 있는 한 경찰관은 집에서는 자상한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쉬는 날에는 아이와 기꺼이 축구를 같이 할 정도로 가정적이다. 또한, 카르텔의 수장으로 나오는 이는 매일 살인을 지시하며, 피해자들의 사지를 자르고 벌거벗긴채 시체를 걸어놓는 악행을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가족 식사 자리에서는 자신의 두 아이에게 사랑스런 눈길을 보내는 평범한 아버지이다. 남자 주인공이 태연하게 카르텔 수장의 두 아이와 아내를 살해할 때, 관객들은 오히려 남자 주인공의 냉혈함에 치를 떤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의 가족이 카르텔의 수장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이 복수의 의미임을 수용할 수 있다.

3.
“시계의 작동 원리를 묻지 말고 시계바늘이나 잘 보고 있어라.”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처음 만났을 때 꺼낸 조언이자 인물간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추구하는 여자 주인공 입장에서 이 조언은 매우 불편하다. 하지만, 진실과 원칙을 추구하며 관찰자 관점에서 냉정을 유지하던 여자 주인공은 계속해서 혼돈에 빠져간다. 여자 주인공의 이러한 혼란은 영화 초반부에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장면에서, 후반부에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강하게 부각된다. 영화 후반부에서 남자 주인공이 진실을 밝히겠다는 여자 주인공에 총을 겨누며 협박하자 여자 주인공은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이 명분없이 자신을 해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이해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 눈물은 공포 때문에 흘린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호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내면의 혼란 때문에 흘린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4.
여자는 남자의 과거 순수했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원칙을 추구하던 여자 주인공은 마지막 순간 불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수용한다. 한편, 여자를 협박하던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면서도 여자의 겁먹은 눈빛에서 순수했던 자신의 과거를 읽었을 것이다. 눈빛과 눈빛 사이에서 선과 악, 현재와 과거가 교체하는 순간 이 영화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모호한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5.
이런 맥락에서 이번 영화의 프리퀄을 제작한다고 한다면 아마도 남자의 변화 과정을 다룰 것이다. 과거 선과 악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했었던 순박한 이에서 그 경계가 허물어져가는 과정을 밀도 깊게 묘사할 가능성이 높다. 남자 주인공이 어설픈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불의가 미치지 않는 시골로 가라는 말에 여 주인공은 아마도 시골로 낙향하여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의를 추구했을 것이다. 한편, 프리퀄이 기대되는 이유는 남자 주인공은 유사한 상황에서 다른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골로 낙향하여 어설픈 정의를 추구하는 대신 과감하게 복수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를 실현시키려 했을 것이다.

6.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은 또다른 현실의 모호함을 드러낸다. 남자 주인공은 복수를 감행함으로써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한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경찰관의 아들에게는 또다른 불의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죽은 경찰관의 아이는 친구들과 축구를 즐기다 총성이 들리자 잠시 공포에 멈추어서나, 이내 곧 아무일 없다는 듯이 축구를 즐긴다. 그 순간 그렇게 지나친 그 총성은 언제가 그 아이에게 풀리지 않는 불의가 존재함을 자각하게 만들 것이다.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남자 주인공처럼 적극적으로 복수를 감행할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누군가에는 하나의 실타래가 풀렸을지언정 다른이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실타래가 얽혀 있음을 냉냉하게 묘사한다.

7.
영화 제목 ‘시카리오’는 유대-로마 전쟁 시절 일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고수하며, 이교도들을 기꺼이 살인하던 암살자들을 일컫는다. 그 당시 자신의 ‘신’을 지키기 위해 살인이라는 수단이 정당화되었듯, 이 영화는 또다른 ‘시카리오(암살자)’를 내세우면서 선악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이렇듯 이 영화는 제목부터 플롯 모두 ‘선악의 모호함’이라는 현실에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혼돈을 일관되게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