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이 선이다”라고 외치며 월스트리트에서 귀감이 되던 고든 게코(Gordon Gekko)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FBI와 함께 ‘정직’을 외쳤다. 2012년 2월 발표된 내부자 거래 방지를 위한 캠페인에서 마이클 더글라스는 “너무 매력적인 거래 기회가 있다면, 아마도 이는 내부자 거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며 내부자 거래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고든 게코를 연기한 것은 1987년에 나온 영화 ‘월스트리트’에서였다. 당시 무명이었던 마이클 더글라스는 탐욕적이고 냉소적인 월가 금융인의 연기를 제대로 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 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이 영화에서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한 고든 게코는 내부자 거래로 감옥에 들어간다. 사실 이 영화는 월가의 탐욕에 대해 냉소적으로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하지만 고든 게코의 “탐욕이 선이다”는 지난 30여년 동안 월가에서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지며 롤 모델로 부상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에도 별로 변하지 않은 듯 하다. 2010년 미국의 한 투자은행 회사 설명회에서도 고든 게코를 예로 들며 모름지기 금융인이라면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내부자 거래의 롤 모델이 된 고든 게코
확실히 고든 게코가 금융인의 롤 모델이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 하다. 영화에서처럼 내부자 거래로 감옥에 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2011년 11월 ‘헤지펀드의 거인’ 라지 라자라트남 갤리언 헤지펀드 설립자는 내부자 거래로 11년형을 선고 받았다. 9,280만달러에 해당하는 벌금도 선고 받았다. 여기에는 맥킨지의 이전 회장이자 골드만 삭스 그룹 이사였던 라자르 굽타도 연계되었다. 라자르 굽타는 2012년 6월 내부자 거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AT커니의 파트너도 또 다른 내부자 거래로 형을 선고 받았다. 사모펀드 인수 과정에 자문 역할을 수행했던 셰리프 미트야스 파트너는 약 3만 8천달러의 차익을 거둔 것이 적발되어 유죄를 선고 받았다. JP모건은 자사 펀드 매니저들에게 경쟁사보다 수익률이 낮은 자사상품의 판매를 강요하면서, 고객에게 자사 투자 상품의 수익률이 높다고 거짓 정보를 공표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2012년 7월에는 전력 시장 가격 조작 의혹까지 불거졌다.
하지만 2012년을 진짜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뉴스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바클레이스에서 시작된 리보(LIBOR, 런던 은행간 단기 거래 금리) 조작 혐의는 일파만파로 확대되었다. 리보는 금융 시장에서 일종의 기준 금리로 활용되기 때문에, 이는 전 금융 시장의 신뢰성 파괴로 연결될 수 있다. 리보 조작에 가담한 은행들도 15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본에서도 노무라 증권이 내부자거래로 투자은행 부문의 신뢰성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불법이 성공 비결?
수 많은 불법 사례를 지켜보다 보면 투자 관련 전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부정 행위가 만연해 있는 듯 하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해준다.
2012년 미국의 법률회사 라바톤 서처로우(Labaton Sucharow)가 미국과 영국의 금융 전문가들 각각 250명씩 총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약 24%가 필요하다면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하겠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직장에서 불법행위를 직접 목격했거나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26%나 됐다. 약 1/4의 응답자는 불법이 곧 성공 비결이라고 본 것이다.
불법과 함께 로비 관행도 문제다. 영국의 비영리 언론 단체인 The Bureau of Investigative Journalism (TBIJ)에 따르면, 영국 금융 기관들의 로비 금액이 930만파운드 (약 1,600억원) 규모에 이른다고 한다. 금융 기관의 로비 이후 영국 법인세와 은행의 해외 계열사에 대한 세금이 삭감됐다고 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20개 조직이 금융계 로비에 관여하고 있고, 영국 상원의원의 16%가 이 로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불법 행위는 금융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의 임원들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불법행위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융 회사들보다 비율은 낮다는 점이다. E&Y가 2012년에 전 세계 43개국 글로벌 기업의 임원 1,7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15%가 뇌물 수수가 필요하다면 하겠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5%는 필요할 경우 분식회계도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는 2년 전 조사에서 각각 9%, 3%를 기록한 것에 비해 증가한 수치이다.
탐욕에 기초한 은행 시스템
일련의 사태와 금융인들의 인식을 보면 은행 시스템 자체가 ‘탐욕’과 ‘기만’에 기초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일련의 도덕적 위기 사태는 뱅스터(Bangster)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뱅커와 갱스터의 합성어로 사기꾼적 기질을 보이는 금융인들을 꼬집은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원래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이들이 금융 분야에 취업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분야와 비슷한 도덕심을 가진 이들이 금융 분야로 진출하나, 시스템이 이들을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만드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인간은 ‘선을 추구하는 능력’과 더불어 ‘악을 추구하는 능력’까지 동시에 갖췄다는 점이다.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권 운동가 데스먼드 투투(Desmond Tutu)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위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가장 큰 배움으로 꼽는다. 그는 인터뷰에서 “인간은 상상하지 못할 악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참혹하고 반인륜적인 악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분노, 좌절, 복수심에 찌든 사람들도 관대함과 숭고함을 보여왔다”라고 언급했다. 그 동안 금융인들의 ‘악을 추구하는 능력’은 충분히 봐왔다. 순진한 바램임을 전제로, 이제 금융인들이 탐욕을 넘어 ‘관대함’과 ‘숭고함’을 보여줄 차례이다.
* E&Y, 12th Global Fraud Survey (2012)
* Labaton Sucharow, Financial Services Industry Survey (2012)
* The Bureau of Investigative Journalism (TBIJ), Revealed: The £93m City lobby machine (2012/7/9)
* ALEX PERRY / CAPE TOWN , Retiring from Public Life, Desmond Tutu Reflects on Good and Evil, Time World (201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