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에 리테일매거진(http://www.retailing.co.kr)에 기고한 글입니다.
국내 유통업계가 선진 시장으로 일본을, 신흥 시장으로 동남아에 주목하는 동안 대만 유통시장은 소외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만 소매시장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선진화돼 있으며, 특히 유통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편의점시장은 한국 유통의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므로 충분히 벤치마킹할 만하다.
숨겨진 유통강국, 디테일의 힘으로 대륙 사로잡다
대만은 한국과 가까이에 있으나 잊혀진 이웃 국가다. 항공편으로 2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지만, 1992년 양국 간 수교 단절 이후 대만은 우리나라와 가깝지만 먼 나라가 됐다.
그러나 대만 유통시장은 아시아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선진화된 시장에 속한다. 특히 최근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대만 편의점은 한국 유통시장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또한 한류 열풍의 진원지로서 한국 식품 및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제조업체들도 신흥 판매처로서 대만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대만 유통업계의 성공 사례는 중국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국내 기업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일본 못지않은 편의점 왕국 대만
대만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유통 포맷은 편의점이다. 전체 유통시장에서 백화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으며, 업태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만 소비자들은 ‘정부 없이는 살아도 편의점 없이는 못 산다’라고 말할 정도로 편의점 이용에 익숙하다.
현재 대만에서 편의점 총 점포 수는 1만 개를 넘어 인구 2,300명당 1개꼴로 존재하며, 전 세계에서 ‘편의점 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대표 기업으로 세븐일레븐(4,972개)을 필두로 훼미리마트(2,903개), 하이라이프(1,296개), OK-마트(880개)가 있다.
대만에서 편의점은 2000년대 접어들며 핵심 유통채널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전만 해도 대형마트 시장 규모가 편의점보다 컸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대만 인구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성 싱글족은 2000년 약 65만 가구에서 2010년 86만 가구까지 1.3배 성장했다. 이렇게 변화하는 고객 라이프스타일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한 곳이 바로 편의점이다. 그 결과, 2000년 5,674개였던 편의점 점포 수는 2010년에 9,483개로 10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대만 편의점의 가장 큰 특징은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성장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국내 편의점 경우 양적 성장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여전히 술, 담배 매출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하며 차별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대만 편의점은 음료와 가공식품 매출 비중이 65%에 달하며 상권 유형에 따라 매장 구성 및 상품구색을 달리하고 있다. 198~265㎡ 남짓 공간에서 화장실, 테이블, 복사기 등을 갖추고 있어 식사 해결뿐 아니라 친목 모임이나 비즈니스 미팅까지 가능하다. 나아가 지역 특성에 맞는 PB상품을 개발하고, 커피나 아이스크림 메뉴 개발을 통해 소비자에게 편안한 안식처 같은 느낌을 준다.
2010년 AC닐슨 자료에 따르면 대만 인구의 3분의 1이 매일 편의점을 방문할 정도로 일상생활에 편의점이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대만 소비자들은 아침, 점심을 편의점에서 사먹는 것은 물론 차나 간식을 사러 편의점에 들른다.상품 및 서비스뿐 아니라 마케팅 측면에서도 편의점 업계는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2005년 전 세계 최초로 자체 캐릭터인 ‘오픈 찬(Open Chan)’을 만들어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오픈 찬은 외계에서 온 강아지를 형상화한 캐릭터로, 관련 음반도 발매됐고 캐릭터를 형상화한 쇼핑몰과 테마파크까지 존재한다. 최근에는 오픈 찬 뮤지컬 공연까지 제작해 티켓 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한 훼미리마트는 3~10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편의점 체험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1시간짜리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고객에게 인사하는 법, 상품을 스캔하고 결제하는 법을 교육 받는다. 훼미리마트가 유튜브에 올린 ‘어린이 점장체험(小小店長體驗營)’ 동영상은 259만 뷰를 넘어섰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고객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대만 편의점의 마케팅 활동과 상품구색 강화는 최근 양적 성장 한계에 이른 한국 유통업계도 주목해야 할 부문이다.

한국 제조사들의 신흥 판매처로 부각
대만은 한류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초반부터 ‘겨울연가’, ‘가을동화’,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극중에 나오는 한국 제품에 대해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급증했다.
최근에는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 열풍이 불면서 한국 제품이 또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례로, 극중 여주인공이 치킨을 즐겨먹는 것이 화제가 되자, 한국식 양념치킨과 맥주의 조합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쇼핑몰에서는 양념치킨 재료를 판매하고, 편의점에도 한국 치킨이 등장했을 정도다. 또한 극중 화장법이 여성 팬들에게 화제가 되면서 한국의 메이크업 베이스와 립스틱 판매량도 월평균 10% 이상 늘어났다. 드럭스토어인 왓슨스에서는 K-뷰티 제품들이 빠른 속도로 판매되고 있다.
온라인몰과 홈쇼핑은 핵심 고객층인 젊은 여성을 유인할 수 있어 국내 기업들이 대만 진출시 자주 이용하는 채널이다. 대만인들이 즐겨 찾는 야후 온라인몰에서는 한국 식품, 화장품 등 한류 관련 상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 국순당은 대만에 진출하면서 세븐일레븐의 웹사이트를 통해 ‘아이싱’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홈쇼핑 역시 한류 제품 판매에 있어 중요한 채널이다. 대표 사례로 정관장 경우 홈쇼핑을 통해 대만 소비자들에게 인지도를 쌓은 후 지속적으로 매출을 향상시키고 있다. 대만에서 홈쇼핑을 이용하는 여성 고객들은 ‘라네즈’와 ‘아이오페’ 등 한국의 매스 브랜드를 구입하는 성향을 보이며, 한국 배우들이 사용한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대만 홈쇼핑 MD들은 최근 신사동, 동대문, 명동 등에서 유행하는 한국의 패션 아이템을 적극 발굴하고 있다. 실제로 동대문 신발 브랜드가 대만 홈쇼핑에서 판매된 사례도 있다.
최근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 고조는 한국 제조사에게 또 다른 성장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꿀 엑기스’, ‘눈에 좋은 비타민’ 등 건강 보조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국내 건강기능식품 제조사들이 충분히 해외 진출을 고려해볼 만하다. 또한 먹을거리를 안전하게 조리할 수 있는 ‘원액 주서기’, ‘제면기’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 휴롬 등 한국에서 검증된 브랜드들이 대만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단, 한국 제조업체들이 대만에 진출할 때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는 대만 시장 진출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한국 교포들을 1차 타겟으로 공략할 수 있으나, 대만에 거주하는 한인은 3,500여 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만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소구할 것인가가 성공 여부를 가늠한다. 또한 대만은 7일 이내 반송이 가능하며, 이 경우 비용은 판매자가 부담해야 한다. 반면 5%대의 저렴한 부가가치세는 대만 시장의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브랜드 이미지와 저작권 노력을 소홀히 할 경우 소위 말하는 ‘짝퉁’ 제품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대만 RT마트가 중국 시장을 접수한 비결은?
중국 유통시장에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기업을 찾아보면 대부분 대만계 업체다. 1993년 태평양(太平洋) 백화점 진출을 시작으로 대만 유통업체들은 백화점, 슈퍼마켓, 편의점 등 전 업태에 걸쳐 중국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가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과 달리 빠른 속도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만계 유통업체들이 중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최근 급변하는 시장 트렌드를 재빨리 읽고, 이에 신속히 대응했기 때문이다. 중국 유통시장은 최근 백화점의 대형화와 함께 가전 전문점의 하이퍼마켓화, 편의점의 급성장이 두드러진다. 또한 과거 1선 도시 중심에서 최근에는 2선, 3선 도시까지 유통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했던 대만계 유통사들은 최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약진하고 있다.
언어 장벽이 없기 때문에 대만 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만 유통업체들은 철저한 고객 분석을 통해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접근성 중심의 부동산 관점으로 중국 시장을 바라봤다면, 대만 기업들은 철저하게 차별적 고객 특성을 기반으로 현지 시장에 접근했다. 즉, 중국 시장을 화북(華北), 화중(華中), 화남(華南), 동북(東北), 주강(珠江) 등으로 구분하고, 해당 지역별 지리적 특성과 소비문화를 고려해 세분화 전략을 수행한 것이다. 중국 전역을 직접 답사하고 미세한 문화적 차이를 연구한 결과, 대만 유통기업들은 오늘날 커다란 대륙에서 선구적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특히 중국 대형마트 시장의 선두주자인 대만계 RT마트(大潤發)가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RT마트는 중국의 지역별 소비패턴을 관찰, 분석함으로써 고객에게 차별적으로 다가갔다. 예를 들어, 육류를 판매할 때 동북 지역은 큰 덩어리로 자르고, 광동 지역은 좀 더 얇게 잘라 제공해야 현지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적용했다.
또한 중국인의 쇼핑 습관을 철저히 연구한 결과, 중국 소비자들은 신선식품을 매일 사가는 빈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신선식품 매장을 1층에 배치하고, 총 진열 면적의 30~40%를 할애했다. 반면 경쟁사인 까르푸와 월마트는 신선식품을 2층이나 지하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밖에도 현지인들의 생활 습관에 따라 오토바이, 자전거 주차장 등을 강화하는 등 RT마트는 철저하게 고객 중심적 경영을 수행했고, 그 결과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10년 만에 중국 대형마트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됐다.

성숙기 거친 대만 시장을 벤치마킹하라
대만계 유통업체들은 자국에서 수행했던 차별화된 고객 분석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국에서 같은 전략을 펼칠 수 있었다. 국내에서 2010년을 전후로 인구구조 변화, 백화점 매출 부진, 대형마트 확장 한계 등이 가시화됐다면, 대만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유통시장의 성숙기를 경험했다. 이때부터 고객 성향에 따른 차별화된 상품구색, 점포 배치 및 마케팅 기법을 적용해왔다. 이러한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오늘날 중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도 과거 대만 유통업체들이 자국에서 어떻게 차별화를 시도했는지 참조하면 중국뿐 아니라 치열한 한국 시장에서 생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대만계 유통업체들은 국내 기업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되며, 생존 해법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만 편의점은 한국 유통의 가까운 미래라 할 수 있다. 한류 열풍이 다시 불면서 한국 상품에 대한 높은 관심 역시 국내 소비재 기업들에게 청신호다. 이러한 이유로, 오랫동안 잊혀왔던 대만 유통시장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