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 문제가 살인과 관련된 것이라면 ‘왜?’라는 궁금증을 야기한다. ‘누가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이 질문은 ‘어떻게’로 이어진다. ‘어떻게 죽인 자를 밝혀낼 것인가?’ 추리 소설의 묘미는 ‘왜’와 ‘어떻게’ 사이의 긴밀한 균형에 있다.’죽인 자’와 ‘죽은 자’의 ‘왜’는 서사를 만들어내고, ‘전모를 밝히려는 자’의 ‘어떻게’는 서사에 몰입감을 부여한다.
일본 제 4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대상 수상작인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은 ‘왜’와 ‘어떻게’라는 재료가 먹기 좋게 버무려진 맛깔좋은 요리였다. 셜록과 왓슨의 조합처럼, 살인의 비밀을 밝혀내는 ‘다카시’와 ‘시라토리’의 조합은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나이팅게일의 침묵>과 <제너럴 루즈의 개선>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후속편이다.
나이팅게일의 침묵
나이팅게일은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지칭하나, 새의 한 종류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이든 나이팅게일은 본질적으로 침묵과는 거리가 멀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간호사의 길을 걸었고, 당시 군의 비웃음에도 위생관념을 지속적으로 설득시켜 의료 위생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널리 퍼트렸다. 새의 한 종류인 나이팅게일의 이름은 ‘밤’을 뜻하는데, 이 새는 밤에 유독 지저귀기 때문이다.
제목은 모순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모순을 통해 소설의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절대로 침묵할 수 없는 주인공을 내세우고, 역설적으로 그가 침묵할 수 없는 상황을 제시하며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도조대학병원 소아병동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이 병동에는 ‘망막아종’이라는 일종의 안구암을 가진 한 10대 소년이 입원해 있다. 이 소년은 부모의 학대와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분노로 가득차 있다.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이 소년을 정성껏 간호하는 소아병동 간호사를 조망한다. 이 간호사는 환자에 대한 열정도 매우 높지만, 노래를 통해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의 아버지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은 이 간호사와 소년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정말로 범인은 누구일까? 과연 소년과 간호사가 살인자일까?
“소아과 의사가 줄어든 것은 의료행정이 냉대해온 결과다. 궁지에 몰리면 “소아과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넘어가려 한다. 어느 병원이 소아과를 포기하면 다른 병원에 환자가 집중된다. 그리고 스태프는 피폐해 간다. 관료 시스템이 낳은, 서류 위에서 짜 맞춰진 땜질식 의료 개혁안은 의료 현장에 해악을 뿌려대고 있다. 어린이와 의료를 경시하는 사회에 미래는 따위는 없다.”(p.84)
소설이 독자에게 던지는 상황은 흥미롭다. 하지만 재미나 완성도면에서는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이나 <제너럴 루즈의 개선>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원래 이 소설은 <제너럴 루즈의 개선>과 엮어서 한 권으로 출시될 의도였으나, 양이 너무 많은 관계로 두 편으로 나뉘었다. <제너럴 루즈의 개선>은 하나의 큰 사건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반면,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큰 사건이 앞에서 소개되고 범인도 쉽게 추측이 가능하여 몰입감이 떨어지고 산만하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제너럴 루즈의 개선>과 동일한 시간대에 진행되는 다른 에피소드인만큼 읽어볼만한 가치가 높다.
제너럴 루주의 개선
<나이팅게일의 침묵>이 다소 산만한 반면, <제너럴 루즈의 개선>은 작가 특유의 몰입도를 가져오는 소설이다. 비록 추리 소설의 전형인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특정한 문제에 대해 밀도있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주인공은 도조대학 응급실을 책임지고 있는 한 의사이다. 약 15년 전 화재사건이 크게 일어났을 때, 신입 의사였던 그는 마치 장군(제너럴)처럼 응급실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리더로서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간호사에게 빨간 립스틱(루주)을 빌려 쓴 것이 계기가 되어, ‘제너럴 루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그를 응급실의 리더로 모시며, 자기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간호부장과 스태프들이 존재한다. 일본 정부와 도조대학 회계 부서는 적자라는 이유로 도조대학의 응급실에 대한 지원을 최소화하려 하나, ‘제너럴 루주’는 환자를 위해 그러한 비난을 감수한다.
작가의 문제제기는 명쾌하다. “이러한 이상주의적 의사가 현실 속에서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이렇게 환자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정말로 가능할 것인가?” 질문은 명확하나, 그 답은 공허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소설은 응급실의 긴급한 상황을 빠른 속도로 그려나가면서 생생함을 전달해준다. 마치 내가 응급실의 그 공간에 있는 것 마냥, 나라도 정신 없이 들어오는 환자들을 도와야 할 것 처럼. 소설을 읽으면서 아주대 병원의 ‘이국종 교수’와 드라마 ‘골든타임’이 계속 떠올랐다.
“수익이라고? 구급 의료에서 수익이 날 리 없잖아. 폭풍처럼 사고는 느닷없이 일어나 질풍처럼 사라져버리지. 재고관리 같은 건 애당초 할 수가 없어. 소아과도 마찬가지야. 산부인과도, 사망 시 의학검색도. 현재 경제 시스템에서는 의료의 근간을 이루는 분야가 푸대접받고 있어. 우리가 하는 일은 경찰관이나 소방관과 마찬가지야. 사고가 없으면 무위도식하는 거지. 그렇다고 국가가 경찰관이나 소방관에게 이익을 내라고 요구하던가? 경찰과 소방서에 세금이라는 경제 자원을 분배하는 걸 국민이 거부하나?” (p.328)
실제 의사이기도 한 저자 ‘가이도 다케루’의 저작물 3권의 제목은 모순이라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은 한때 수술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수술팀이 어떻게 무너져가는 가를 조명으로 비추며, 그 안에서 구조적인 의료 이슈를 파헤친다. <나이팅게일의 침묵>에서는 절대로 침묵할 수 없는 간호사를 조명하며, 소아 병동 의료 체계의 모순을 서술한다. <제너럴 루즈의 개선>에서는 결국 현장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응급 의료의의 심정을 보여준다.
추리 소설이면서도 일본 의료체계의 모순을 같이 보여주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특히나 이 소설이 술술 읽히는 이유는 일본의 의료 시스템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출간된지 5년 이상된 ‘가이도 다케루’의 추리 소설을 지금 읽어도 재미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