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지털 혁신의 시대이다. 뒤쳐지면 도태될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디지털 혁신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파괴적이지 않았다. 포춘 500대 기업과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놀랍게도 기업들의 순위는 안정적이었다. 소수 회사만이 1995년 이후 시작되었을 뿐, 대부분 회사는 그 이전에 존재했고 새로운 시대에도 잘 적응해왔다.
2/ 파괴적 디지털 혁신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3가지다.
— 1) 파괴적 디지털 혁신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고, 전 산업 영역을 위협하고 있다.
— 2) 새로운 회사들이 파괴적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 3) 기존 기업이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3/ 2020년 포춘 500대 기업 기준, 1995년 이후 만들어진 회사는 페이스북(메타), 구글(알파벳), 테슬라, 넷플릭스, 우버 등 17개에 불과하다. 1995년 이전부터 존재했고, 더 성장해 2020년 포춘 500에 들어간 기업은 231개다. 다른 54개는 기존 사업이 분사했거나 구조조정으로 만들어진 기업이다.
4/ 글로벌 500대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2020년 순위에 진입한 신규 기업은 12개 뿐이다. 1995년 목록에 들었던 164개 회사는 여전히 2020년 순위에도 존재한다. 324개 기업이 목록에 새로 진입했지만 1995년에 이미 존재했거나, 존재했던 회사의 자회사이다.
5/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파괴적 디지털 혁신은 광범위하지 않다. 에너지, 재료, 화학, 중공업, 자동차, 항공우주, 소비재, 헬스케어, 제약, 운송 및 여행, 금융서비스, 보험 등 거의 전 산업 분야는 순위가 안정적이었다. 포천500대 기준, 유일하게 TMT(기술, 미디어, 통신)와 리테일(레스토랑, 호텔 포함) 산업은 순위에 큰 변화가 있기는 했다. 1995년 목록에 있던 TMT 기업 52개 가운데 5개가 파산했다. 2020년 목록에 있는 TMT 기업 62개 가운데, 10개가 1995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리테일에서는 1995년 목록에 있던 67개 회사 중 19개 회사가 파산했고, 2020년 목록에 있는 74개 회사 중 3개가 신규였다.
6/ 기존 기업들은 디지털 위협에 성공적으로 대응해왔다. 1) 반격하기, 2) 강화하기, 3) 축소하기, 4) 철수하기 등 4가지 디지털 대응 전략이 유효했다.
7/ 기존 기업들은 성공적으로 ‘반격’하고 있다. 기존 사업 내에 디지털 부문을 새로 만들거나 인큐베이터 또는 엑셀러레이터를 통해 디지털 사업 기회를 추구했다. 뉴욕타임스의 온라인판 창간, 주요 완성차 기업들의 전기차 출시, 영국항공의 무료 서비스 고 출시 등 ‘반격하기’는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8/ 기존 기업이 강점을 활용해 차별점을 더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2000년대 디즈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디즈니는 픽사와 마블, 루카스 필름을 인수하고 블록버스터 히트작을 만들었다. 넷플릭스를 상대로 높은 협상력을 발휘하고,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 출시 일정을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을 만들었다. 화이자는 워너-램버트, 파마시아, 와이어스를 인수하고 마케팅과 유통 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을 폈다. 브랜드, B2B 네트워크, 글로벌 공급망 등을 통해 더 강하게 차별화하고 있다.
9/ 한편, 약점은 과감하게 ‘축소’하는 전략을 펴기도 한다. 카메라 제조사 코니카와 미놀타는 디지털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자 2003년 합병을 했다. 노키아 지멘스 네트워크는 2016년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했다. 최근에는 은행들이 암호화폐를 규제하기 위해 중앙은행 및 정책입안자와 협력하고 있다.
10/ 마지막으로 ‘철수’도 과감하게 선택되고 있다. 톰슨은 1990년대 신문사업을 매각하고 로이터와 합병을 했다. 후지 필름은 필름 사업에서 탈출하여 의료, 영상 및 재료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기업들은 기존의 역량을 새로운 시장에 재정의하여 신규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11/ 4가지 전략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JP모건은 암호화폐를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동시에 은행 컨소시엄에 가입해 암호화폐에 대해 조사했고, 직접 투자도 시행했다. 크라이슬러는 신생기업인 오로라와 웨이모와 파트너십을 맺고, BMW, 인텔, 모바일아이와 컨소시엄을 구하고, 프랑스 PSA와 전면적 합병을 추진했다. 어떤 옵션을 선택하든 운영 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대다수 기존 대형 기업들은 디지털 기술을 수용해서 새로운 프로세스나 사업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12/ 결국, 디지털 혁신은 생각만큼 파괴적이지도 않고, 전 산업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지도 않다. 새로운 기술은 몇 년이 아니라 수십년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신문 산업은 지금도 종이와 온라인이 공존하고 있다. 생명공학은 1980년대 잠재적 파괴로 불렸으나, 실제 신약이 생산되고 대량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였다. 따라서 무작정 혁신을 추구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세우고,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조직의 역량에 맞춘 점진적 적응 전략을 찾아야 한다.
<Julian Birkinshaw, “How Incumbents Survive and Thrive“, Harvard Business Review (January–February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