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MBA 인턴을 할 때이다. 스페인에서 온 동료가 있었는데, 처음부터 우리는 삐걱거렸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어느 날 중국인 매니저와 같이 얘기하다가 중국인 매니저가 자기네 나라에서는 바퀴벌레, 뱀, 쥐 등 못 먹는 게 없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참 별게 다 자랑스럽구나 했다. 하지만 갑자기 스페인 친구가 화제를 한국으로 돌리더니 “야 너흰 개도 먹잖아. 원래 아시아는 다 그러냐?”라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잠깐 멈칫하며 고민했다. 이걸 농담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문화적 공격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그런데 이 친구가 말하는 방식이 전부 이런 식이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대처했으나 이런 무례함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참 당황스러웠다.
사적인 부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서로 일을 할 때도 어긋났다. 일단 상대에 대한 ‘공경’은 전혀 없는 친구니 사사건건 부딪혔다. 둘 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오히려 언어적 의사소통은 편했다. 다만 일하는 방식, 관점, 동료를 대하는 방식, 일하는 속도 등이 너무나 상이했다. 아니 같은 게 없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듯 하다.
하루는 크게 싸웠다. 매니저가 스위스로 출장 간 사이 이 친구가 뜬금 없이 나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내 업무 성격 상 이 친구의 명령을 받아야 할 입장도 그렇다고 도와주어야 할 상황도 아니었다. 인턴의 위치인지라 가급적 말썽 없이 보내려 했으나, 그날따라 안하무인적 태도가 너무 거슬렸다. 아마 정중하게 부탁했다면 들어줬을 테지만, 그날은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싸운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선을 지켜 업무 분장에 대해 상세하고 논리적으로 대응했을 뿐이다. 그리고 도와달라고 하면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가르쳐 줄 수는 있다고 말하며 그 동안 그 친구의 안하무인적 태도에 약간의 복수를 더했다.
그 날 퇴근할 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한편으로는 이 친구와 계속 서먹서먹하겠구나 생각했지만, 사실 내 업무와는 크게 상관이 없어 그냥 마음 편히 있기로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 다음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편하게 대했다. ‘안하무인’적 태도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러니 더 실망이었다. 강자에게 약하게 약자에게 강하게 대하는 사람이야말로 제일 하수 아니던가.
겉으로는 나 역시 편하게 대하는 척 했지만 마음은 계속 불편한 게 사실이었다. 내 인턴 프로젝트가 끝나갈 무렵,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그 동안 도와주었던 동료들 이름을 하나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이 스페인 친구 이름은 넣고 싶지 않았으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중시하는 한국의 정서상 같이 넣었다.
자료를 공유하고 발표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이 친구가 갑자기 오더니 자기 이름을 넣어줘서 고맙다고 악수를 청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도와줄 게 있다면 언제든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뭐야 이 친구는 왜 진심으로 이렇게 이야기하지? 서먹한 게 없나?’ 정말 이해가 안됐다. 그 친구가 기회주의적인 친구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내가 속이 좁은 건가? 이것도 아니면 제 3의 이유가 있는 건가? 난 프로젝트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왔지만, 이 친구는 내게 계속 연락을 했다. 내가 최종 오퍼를 받은 팀은 다른 팀이었으나, 이 친구는 내가 원한다면 자기 팀으로 얼마든지 추천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어 진짜 뭐지? 나를 정말 좋아하는 건가? 그렇게 싸웠는데도?’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기준
이 의문은 계속 됐다. 학교로 돌아와 교포 친구들과 다른 미국인 친구들에게도 물어봤으나, 그렇게 속 시원한 답은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연구 논문은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쉬릴 코플만 미시건 경영대학원 교수는 듀크 대학 교수와 함께 문화적 차이가 협상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이 실험은 42명의 홍콩 출신 학생들과 34명의 이스라엘 출신 학생들을 대상으로, 겸손함을 지닌 동양의 문화와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이스라엘 문화의 차이가 협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규명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협상 한 달 전 피실험자들은 몇 달 뒤 있을 결혼식 피로연 음식을 준비할 업체와 협상을 앞두고 있는 상상을 해보라고 요구 받았다. 그리고 협상 당일 30대 초반의 백인 여성 매니저의 동영상을 보며 협상을 하게 된다.
각각 홍콩, 이스라엘 절반의 학생에게는 잘 웃고, 협조적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하는 여성 매니저의 동양상을 보여주었다. 한편, 다른 절반의 학생에게는 고압적이고, 짜증스럽게 얘기하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협상 말미에 공통적으로 백인 여성 매니저는 “지금 계약을 하든지 아니면 다른 업체를 알아보라”라고 얘기한다.
최종적으로 서명을 한 비중은 어떻게 됐을까? 홍콩 학생들의 경우 긍정적인 매니저에 서명한 비율은 71%인 반면, 부정적인 매니저에 대해 서명한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한편, 이스라엘 학생들은 긍정적이나 부정적이나 서명한 비율이 유사했다. 즉, 아시아인들에게는 협상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중요하다. 긍정적이고 협조적인 분위기가 결정적 영향을 준다. 반면, 이스라엘인들은 협상 내용이 중요할 뿐 형식은 그리 중요치 않다. 오히려 이스라엘 인들은 의견 차이를 무례함으로 본다기 보다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이 논문의 주장이었다.
이 논문을 봤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내가 바라보는 방식과 조금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음을 처음으로 느꼈다. 이스라엘과 스페인 문화가 똑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직설적인 의사 표현은 스페인도 이스라엘에 결코 뒤지지 않는 듯 하다.
아마도 나랑 싸웠던 스페인 친구는 싸운 날 처음으로 내가 자신한테 또는 자신의 일에 관심을 준다며 오히려 나한테 호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 친구가 보기에는 그 전까지만 해도 거리감을 가지며 오히려 내가 그 친구를 멀리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이건 위 실험 결과를 보고 유추한 개인적 결론에 불과하다. 하지만 항상 역지사지하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때로는 오만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느꼈다. 왜냐하면 내가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버리고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같음’보다 ‘다름’
흔히 우리는 친구를 찾을 때 ‘다름’보다 ‘같음’에 집중한다. 공통 관심사나 취미를 얘기하려 하며 끊임 없이 ‘같음’을 확인하려고 한다. 같은 문화권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문화권이라면 ‘같음’을 찾으려는 노력은 그리 효과가 없을 수 있다. 까닭에 전반적으로 언어와 상관없이 백인은 백인끼리, 흑인은 흑인끼리, 동양인은 동양인끼리 어울린다.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다름’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적어도 그 스페인 친구와 난 ‘다름’을 발견했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 <Shirli Kopelman and Ashleigh Shelby Rosette, “Cultural Variation in Response to Strategic Display of Emotions During Negotiations”, Ross School of Business Working Paper Series Working Paper No. 1064, January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