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무릎 위로 돌을 받히고, 노인은 무릎 위로 세월을 받힌 듯 하다. 노인의 꼭 다문 입술이 비장해 보인다. 망치를 꽉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듯 하다. 이젠 서로 말동무하기조차 버거웠을까? 바구니에 꽉 찬 돌을 버리러 가는 소년의 뒷모습이 무척 안쓰럽다.

귀스타프 쿠르베(Jean-Desire Gustave Courbet)의 ‘돌을 캐는 사람들(Les Casseurs de Pierre)’이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그림이 마치 사진을 보는 듯 하다. 잘 그렸다는 감흥 외에 그리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그림이 발표된 1849년에는 달랐다. 당시 평단과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어떻게 감히 꾸질꾸질한 노동자를 화폭에 담는다 말인가?

가히 혁명적이었다. 당시 화풍은 소위 ‘로코코’라 불리는 낭만주의였다. 귀족에 취향에 맞추어 감미롭고 세련된 그림들이 주류였다. 아름다운 것은 더 아름답게, 귀족들의 삶은 더욱 더 찬란하게 표현됐고, 그림은 이상적 삶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하지만 쿠르베는 이를 과감하게 거부한다. 이 그림이 당시 귀족 사회에 어떤 파장이 몰고 왔을지 상상만해도 즐겁다. 쿠르베는 화폭에 ‘이상’이 아닌 ‘현실’을 그려 넣고 싶었다. 그가 본 현실은 아마도 노동자들의 땀이었을 것이다. 하지마 이 땀은 당시 귀족들에게 비천한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쿠르베로 시작된 ‘사실주의’ 화풍은 그리는 방식의 변화도 가져왔지만, 화폭의 주인공도 달라지게 만들었다. 르네상스 시대가 화폭의 주인공을 인간의 삶으로 변화시켰다면, 쿠르베는 이를 노동자로 인식했다. ‘본 것만 그리겠노라’고 선언한 쿠르베는 당대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현실을 성공적으로 재현했다. 이 재현은 쿠르베 이후 ‘3등열차’로 유명한 도미에(Honoré Daumier)로 이어지며, 사실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빈곤층, 기업 수요의 주역으로 등장

1849년 화폭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빈곤층이었지만, 경영에서는 여전히 이름 없는 잡초였을 뿐이다. 이를 소비자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데뷔시킨 주역은 미시간 경영대학원 C.K. 프라할라드 교수였다. 프라할라드 교수가 2004년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 Fortune at the Bottom of Pyramid>를 출간하기 전까지만 해도, 빈곤층은 기업들에게 구매력이 없는 ‘그냥 사람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프라할라드 교수는 그들을 당당히 소비 시장의 주역으로 등장시키며 많은 기업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루 평균 2달러 내외 소득을 버는 전세계 약 40억명이 마케팅의 대상으로 부각된 역사적인 순간이었고 충격적이었다. 쿠르베의 작품이 평단에 준 충격만큼이나.

프라할라드 교수의 빈곤층에 대한 고민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듯 그는 어느 날 고민에 빠진다. “우리는 세계의 가장 빈곤한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기술, 경영 노하우, 자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 세계에 만연한 빈곤에 대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무슨 연유 때문일까? 왜 우리는 빈곤층과 더불어 잘 사는 자본주의를 만들어 갈 수 없는 것일까?”

약 10여년간의 고민에 걸쳐, 프라할라드 교수는 ‘저소득층도 충분히 매력적인 수요층이 될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정의한 저소득층(the Bottom of Pyramid, BOP)은 구매력 평가기준으로 1인당 GDP 1,500달러 이하 또는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는 전세계 약 40억명이고 인도 기준으로는 약 7억명 정도되는 인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로벌 기업들이 기존에 팔고 있던 제품을 그대로 팔면 의미가 없다. 선진국에서 팔던 제품은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제품 위주이다. 하지만 저소득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적절해야 하며, 산간 오지까지 접근성이 있어야 하며, 저소득 소비자들이 충분히 이용 가능한 제품’이어야 한다.

‘적절한 가격(Affordability)’은 말 그대로 저렴한 가격을 의미한다. 선진국에서 홍보 용품으로 쓰이는 일회용품이 오히려 여기서는 매력적인 상품이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0.5루피(10원)에서 2루피 사이의 샴푸, 성냥, 비누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 그 동안 필요했지만 대기업은 관심이 없어 진출하지 않았고, 수요자는 없어서 못사는 제품들이었다.

‘접근성(Acces)’은 도시보다는 산간 오지 등 교통이 불편한 곳에 많이 사는 소비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유니레버의 인도 자회사인 힌두스탄 유니레버(Hindustan UnileverLtd.: HUL)는 ‘방문 판매원’ 제도를 도입했다. 80년대 한국을 휩쓸었던 ‘화장품 방판 요원’과 유사한 제도이다. 이 회사는 시골 마을에서 요건에 맞는 여성을 중간 판매자로 선발한다. 이들은 ‘샥티 암마(Shakti Amma: 힘 있는 엄마)’로 불리며 마을 여성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회사 측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회사는 이 샥티들을 교육시키고 제품의 사용법을 알려주어 수요층을 확대시킨다. 샥티 암마들은 월 수입이 대략 3,000~7,000루피에 이른다. 이 예에서 보듯,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주요 타겟층의 직업이나 일하는 시간, 물류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고, 필요시에는 중간 판매자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이용 가능성(Availability)’이다. 이들 시골에서는 아무래도 전기, 수도 등의 인프라가 미흡하다. 따라서 이를 보완해주는 제품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휴대폰을 판매한 회사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의 수요자들을 위해 이동 트럭으로 충전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다. 물이 귀한 지역 소비자들을 위해 씻을 필요가 없는 면도기를 만들어 판매할 수도 있고, 물을 절약해주는 세탁기를 판매할 수도 있다.

프라할라드 교수가 주창한 위 3A 조건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나, 인도나 중국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에게는 꼭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