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회사 CEO의 고민
“한국 유통 시장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요?”
지금 모든 식품 회사들의 고민이 이 질문에 담겨 있다. 한국 컨설팅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그만큼 답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식품 소비재 회사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기 어려운 ‘교착’ 상태이다. 국내 시장은 정체되고 해외 시장은 막막하다. 가공 식품의 주요 소비처인 대형 할인 마트의 매출이 역신장을 하고 있고, 약 1/3의 매출을 차지하는 대리점 매출은 향후 축소될 것이 예상된다. 해외 매출이라 해봐야 대부분 10% 미만이고 10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지난 주 미팅 자리에서 국내 최대 라면 회사 CEO께서 던진 질문은 명쾌했다. “한국 식품 회사들이 현재의 침체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였다. 이 미팅에서 한국의 대표적 유통처인 대형마트, SSM, 그리고 편의점의 현황과 주요 사업자들의 고민을 말씀 드렸다. 하지만 화두는 자연스럽게 현 유통 시장 상황에 대한 해석, PB와 온라인 채널의 성장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사실 이 화두야말로 국내 식품 소비재 회사들의 대표적 고민이라 할 수 있다. 정답은 아니겠으나, 그 날 답변 드렸던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본다.
- 현재 한국 유통 시장은 일시적 침체기인가요? 아니면 근본적 변혁기인가요?
- 한국에서 과연 PB(Private Brand)가 외국처럼 크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 앞으로 식품 판매처로서 온라인은 어떤가요?
1. 현재 한국 유통 시장은 일시적 침체기인가요? 아니면 근본적 변혁기인가요?
현재 한국 유통 시장은 침체기가 맞다. 작년부터 백화점의 효자 상품이었던, 그래서 1층에서 변함없이 여성 손님을 유혹했던 화장품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소비 심리 위축과 더불어 매출이 하락세다. 그나마 성장세가 높은 편의점도 편의점수가 급증하면서 인구 2,000명 당 1개 정도이다. 편의점 선진국이라 불리우는 일본과 대만이 2,500명당 한 개꼴로 편의점이 있는 것을 보면 한국 편의점 시장은 포화를 넘어선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을 90년대, 2000년대 고성장기 시각에 아직 사로 잡혀 있는 이들은 경기 침체 및 소비 심리 위축에 의한 일시적 하락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근본적 유통 체질 변화기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통 시장을 어떻게볼 것이냐에 정답은 없으나 유통 시장을 4단계로 구분해볼 수 있다.
1단계: 초창기 – 재래 시장기 (No preference)
2단계: 성장기 – 과시 소비기 (Showy)
3단계: 성숙기 – 합리적 소비기 (Rational)
4단계: 정체기 – 맞춤형 소비기 (Self-fulfillment)
한국 유통 시장 역사를 위 단계에 대입해보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후 시대 ‘재래 시장’의 발전과 함께 유통 산업이 시작된다. 이때는 양판점, 재래시장, 동네 슈퍼 등과 같은 업태가 발전한다. 그러다 80년대, 90년대를 거치면서 소위 명품백들을 위주로 한 ‘과시 소비’로 접어든다. 이 때 단연코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채널은 백화점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은 인터넷 열풍과 함께 ‘스마트 컨슈머’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꼼꼼하게 가격을 따져보고 보다 저렴한 곳에서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 때부터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구색을 앞세운 온라인과 로드샵이 강세를 띄기 시작한다. 단적인 예로, 과거에는 화장품 소비가 백화점 중심과 양판점의 양극화된 소비 패턴을 보였다면, 2000년대 중반부터 백화점과 로드샵(미샤 등)에서 같이 구매하는 형태가 두드러지고, 소비 패턴 역시 라인별로 서로 다른 고가, 중가, 저가 브랜드를 섞어가며 쓰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브랜드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면, 2000년대부터는 가격대비 가치(Value for Money)가 핵심적 구매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최근까지도 ‘합리적 소비’는 유통 시장에서 중요한 키워드이다. 이러던 것이 2010년 이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전통 채널로 간주되던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성장세가 확연하게 꺽이기 시작했고, 대안 채널로서 과거에는 낯설었던 드럭스토어(Drug Store)와 같은 신규 카테고리 킬러와 같은 업태가 등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유통 시장은 ‘3단계에서 4단계로의 변혁기’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3단계와 4단계를 어떻게 나눌까? 정답은 없지만, 하나의 척도로서 1인당 GNP가 사용된다. 보통 1인당 GNP가 2만불을 넘어서면서 유통 시장의 성숙기를 넘어 정체기로 넘어가는데 이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 특징이다.
그렇다면 3단계와 4단계는 어떻게 다를까? 3단계에서는 대형 마트를 위주로 ‘가격’과 ‘접근성’이 중요했다면, 4단계는 ‘상품 차별화’와 ‘포맷 차별화’가 핵심이다.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배치하고 컨셉을 부여해서 재미를 주어야 한다. 그래서 머천다이징과 엔터테인먼트를 합쳐 “Merchan-tainment”라는 용어로 4단계를 설명하기도 한다. 최근 대형 마트에서 ‘해외 소싱’과 ‘PB’를 늘릴려고 하는 것도 상품 차별화의 일환이다. 고객들이 해외에서 물건을 ‘직구’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도 ‘합리적 소비’와 ‘맞춤형 소비’의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 한국 유통 시장은 근본적 변혁기가 맞다. 변화의 속도를 예측하기는 어려우나, 변화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고객의 니즈는 더욱 세분화될 것이고, 고객들은 자신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채널/업체를 선호할 것이다.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전적으로 유통 회사와 소비재 회사의 몫이다.
2. 한국에서 과연 PB(Private Brand)가 외국처럼 크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유통 시장이 3단계에서 4단계로 넘어가면서 PB는 증대될 것이다. 사실 식품 제조사 입장에서 PB가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는 많지 않다. 여기에는 PB가 확대될 경우, 식품 제조사들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숨어 있다.
PB는 소비자의 니즈보다는 철저하게 시장 패러다임 변화 상황 속에서 ‘유통사’와 ‘식품 제조사’의 협상력 차이로 이해해야 한다. 같은 유통회사라 하더라도 어떤 시장에 속해 있냐에 따라 PB 비중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월마트는 PB 비중이 18% 수준이다. 하지만 영국의 ASDA(월마트가 인수한 유통사)의 PB 비중은 48% 수준이다. 같은 월마트이지만 미국 시장이냐 영국 시장이냐에 따라 PB 비중이 다르다. 미국, 영국 시장 모두 4단계에 속한 시장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PB 비중이 다른 이유는 식품 제조사의 협상력에 있다. 영국 시장에는 상대적으로 식품 제조사들이 생산 기지가 미흡한 반면, 미국 시장에서는 식품 제조사들이 생산 기지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더해 영국 시장은 상대적으로 좁은 땅덩어리로 시장 성장에 한계가 오자, 유통 회사들이 수익성 증진을 위해 PB에 일찍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식품 제조사들의 협상력이 더욱 작아졌다.
최근 한국 유통 시장이 정체기로 접어들면서 유통사의 고민은 ‘수익성’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매장만 추가하면 매출이 확대되던 것이, 매장 확대가 어려운 지금 시점으로 보면 수익성을 어떻게 확대될 것이냐가 관건이 됐다. PB는 유통사가 직접 제조사를 통제하면서 가격을 조절할 수 있기에 수익성 제고의 장점이 있다. 이미 홈플러스는 한 개 섹션을 통째로 자사 PB로 채우고 있을 정도이다.
여기에 더해 PB를 강화함으로써 국내 식품사 대비 유통사들이 협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통사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매대(Shelf) 구성이다. 즉, PB를 강화하여 매대 내 식품 제조사들의 제품을 적게 배치함으로써 유통사들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한국은 PB 관점에서 보면 아직 초창기 수준이다. PB하면 저렴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고, 실제로 유통 사업자들은 PB를 수익성 제고를 위한 수단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PB를 오래전부터 강화해온 영국, 일본 회사들은 PB 브랜드를 차등화하여 프리미엄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Tesco Finest’나 일본 세븐아이 홀딩스의 ‘Seven Select’ 제품은 다른 소비재 회사 제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한국에 언제쯤 PB의 프리미엄화가 이루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역시 이런 흐름을 따라갈 것이다.
3. 앞으로 식품 판매처로서 온라인은 어떤가요?
온라인 시장은 앞으로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소비 트렌드를 봤을 때, 이 부분은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향후 식품 제조 회사와 유통 회사들의 격전지는 온라인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11번가나 G마켓과 같은 종합몰 외에, 온라인 시장에 먼저 뛰어든 이는 제조 회사들이다. 동원이나 대상이 전용 식품 온라인몰을 시작했고, 아모레퍼시픽도 전용 쇼핑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통 사업자를 중심으로 식품 온라인 사업이 강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이마트, 홈플러스는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온라인을 주목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마트는 2014년 3월 분당 근처(구성)에 ‘온라인 주문 전용 물류 센터’를 오픈했다. 현재는 고객들이 마트 홈페이지에서 주문할 경우, 근처 오프라인 마트 매장에서 물건을 가져다 손님에게 배달해준다. 온라인 매출이 작을 때는 문제가 없으나, 매출이 커지면서 물건을 싣는 직원과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손님 간 간섭 현상이 심화된다. 선도사 사례를 기반으로 봤을때, 보통 온라인 매출이 10% 이상이 될 경우, 별도 센터로 분리하는 특징이 있다. 이마트의 1호 온라인 전용 물류 센터는 이런 관점에서 탄생했다.
향후 온라인 시장은 성장세가 지속될 만큼 앞으로 한국 식품 유통 시장의 관전 포인트는 이 온라인 시장을 누가 지배하느냐가 될 것이다. 우리보다 앞선 영국 시장의 경우, 기존 유통 사업자간 온라인 전투가 치열하다. 테스코는 온라인 전용 물류 센터가 이미 7호점을 넘어섰고, 아스다 역시 5호점을 넘어섰다. 온라인 전용 유통사인 오카도 역시 온라인 사업 강화를 위해 혁신적 노력을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