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저편
최근에 다양한 글로벌 오피스에서 온 컨설턴트들과 함께 두바이에서 글로벌 트레이닝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이 트레이닝에는 전 세계에서 100여명 이상의 서로 다른 국적의 컨설턴트가 모였다.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닌 이들에게 한국은 흥미로운 나라였다.
뉴욕에서 온 친구는 k-town의 맛있는 국물 요리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고, 특히 치킨 요리가 그 중 으뜸이라고 얘기했다. 호주 국적의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 채식주의자 친구는 한국의 비빔밥을 매우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한류 문화에 대해서도 매우 빠삭했다. 싱가폴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한국의 IT 인프라에 감탄하며, 모바일 분야에서의 혁신 사례도 꽤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낯선 타지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긍정적이다. 비단 이번 글로벌 트레이닝 뿐만 아니라, MBA에서도 한류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당시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문자 왔어!’하는 귀여운 말투를 따라하는 중국 친구는 한 예에 불과하다. 이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미국 내 한류 문화 확산의 결정적 계기였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전 이코노미스트 기자였던 다니엘 튜더는 한국은 “고래등 싸움에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영리한 돌고래이다”라고 얘기하며 조금 더 자부심을 갖자고 격려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 – 찰리 채플린
헬조선의 이편
낯선 타지에서는 한국의 희극이 강조되지만, 2030 세대에게 회자되고 있는 ‘헬조선’은 우리 삶의 비극을 조망한다. 20대에게 한국은 ‘노오력’을 해도 ‘흙수저’는 꿈조차 가질 수 없는 곳이라면, 30대에게는 ‘건전한 상식’과 ‘가정’을 버리고 살인적인 ‘근무시간’과 황당한 ‘회식’에 몸을 바쳐야 일을 계속할수 있을까말까 한 곳이다. 이마저도 50세가 가까워지면 강제로 ‘명예퇴직’을 당하는 곳이다. 생애주기에 걸쳐, 한국에서의 삶은 살인적 경쟁으로 요약된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하여 언제 도태될지 모르는 2030 세대에게는 ‘먹고살기즘’과 ‘각자도생’만이 삶의 유일한 선택지이다.
이제 30대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나로서도 한국은 여전히 낯설다. 술을 잘 먹지 못해 회식 자리가 즐겁지 않고, 미국에서 혼자 치기를 즐기던 골프도 한국에서는 치지 않는다. “일 못하는 것은 용서 받아도 의전에 실패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라는 선배들의 조언은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한참 쌓아야 할 수 많은 2030을 술자리로 내몬다.
예컨대, 트레이닝에서 만났던 싱가폴 컨설턴트의 이야기는 ‘헬조선’의 삶이 어떤지 단편적으로 드러내준다. 2000년대 중반 그는 한국에서 6개월 동안 컨설팅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인도 회사가 국내 제조사를 인수하기 위한 실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그는 첫 1.5개월 동안을 정말 고통스러운 기간이었다고 묘사했다. 첫 6주 동안 그의 팀은 아무런 산출물을 만들수 없었다. 클라이언트들이 인터뷰나 자료 협조 요청에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인터뷰 요청을 하면 무시하기 일수였고, 자료가 오더라도 매우 부실해 재요청을 수 차례 반복해야 했다.
이 내 프로젝트팀 리더십 사이에서는 위기로 받아들였고, 수차례 논의 끝에 한국인 컨설턴트를 한 명 투입했다. 그가 내린 처방은 단순했다. 다 같이 술 마시고 노래하자는 것. 그 후로 약 2주 동안 저녁을 주요 클라이언트와 돌아가면서 회식을 했다고 한다. 폭탄주와 노래는 필수였고, 2차는 항상 유흥주점이었다고 한다. 그 후 놀랍도록 업무 협조도가 높아졌고,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쳤다.
“10여년이 지난 요즘도 한국이 그러냐?”라는 그의 질문에 난 “2차를 유흥주점으로 가는 빈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진행형 화두인 헬조선
흔히 우리시대 기성세대는 어떻게 자기가 살고 있는 이 곳을 ‘헬(지옥)’로 부를 수 있느냐며 젊은 세대를 꾸짓는다. 하지만 헬조선의 방점은 ‘헬’에 있다기 보다는 ‘조선’에 있다. 광복 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왕권 신분제였던 근대 사회를 넘어서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 공화국을 건설했지만, 정부 수립 70여년만에 젊은 세대는 이 시대를 ‘조선’으로 회귀했다고 선언하고 있다.
헬조선은 혐오를 담은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그렇다고 헬조선을 젊은 세대의 ‘불평불만’으로 치부하고서는 근본적 처방이 어렵다. “헬조선? 개도국서 한 달만 지나면 자부심 생긴다”느니 “헬조선을 떠나봐야 헬미국, 헬호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와 같은 꾸짖음은 공허하다.
과거 고성장기를 거친 우리 경제는 경제성장률이 3% 미만의 성숙기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경제성장률 자체가 줄어든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의 폐혜를 2030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았다는데 있다. 이러한 변화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2030의 목소리가 치기어린 불평처럼 들릴 것이다. 이런 까닭에 ‘희망’과 ‘미래’를 원하는 20대 청년들에게 정치권 등 소위 기득권 세력은 여전히 ‘닥치고 내 말 들어!’와 같은 ‘권위주의’를 리더십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단적으로 2000년대 ‘언론 자유국’으로 분류되었던 한국은 2015년 기준 현재 ‘부분적 언론 자유 국가’로 악화되어, OECD 34개국 중 30위를 기록할 정도이다. 최근의 전례없는 높은 자살률과 저조한 출산율은 우리 시대 불안을 의미한다. OECD 국가 순위 1위 자살률은 현시대에 대한 ‘희망없음’을 강하게 드러내며, 저조한 출산율은 미래에 대한 삶 역시 불안하게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건전한 토론이 없고, 희망을 이야기 하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좌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조선 담론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을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과거 개인이 못 사는 이유가 ‘노오력’ 부족에 있다며 철저하게 개개인을 힐난했다면, ‘헬조선’은 그 이유가 보다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사회적 이슈에 기인하고 있음을 지목하고 있다. 상처가 있으나 이를 무시하고 망각하면서 미래를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나, 때로는 그 상처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할 때가 있다. ‘헬조선’이라는 화두야말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나가기 위한 객관적 자기 인식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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