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풍선>(2007) 이후 8년 만에 무협영화로 복귀한 허유샤오시엔 감독의 <자객 섭은낭>은  전형적 무협영화가 지니는 액션이나 긴박감이라는 전형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그 자리에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채워넣었다. 과도한 와이어 액션 대신 정적인 자연 풍경을 담고 그 빈 공간에 주인공의 번뇌를 효과적으로 담아냈다. 이 영화에 칸느는 ‘감독상’으로 화답했다.

1.
영화에서는 기존 무협 영화에서 없는결핍 돋보인다.

<와호장룡>의 과장된 와이어 액션, <일대종사>의 복잡하고 세세한 스토리, <영웅>의 공산당을 옹호하는 듯한 치졸한 대의명분으로 치장한 스토리.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전작 <빨간 풍선>(2007) 이후, 8년만에 복귀한 이 영화에서 기존 무협영화가 가지고 있는 전형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새롭게 창조했다. 결핍 대신 그 자리를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실적 전투씬으로 메우었다. 군더더기 대화도 과감하게 생략하고 여백의 미를 강조하여 관객들에게 해석을 맡겼다.

Telegraph사의”심장이 멈출듯한 아름다움, heart-stoppingly beautiful”이라는 평가에서 엿볼 수 있듯, 온전한 풍광을 담기 위해 감독은 수 초 간 자연 풍경을 과장 없이 그대로 담는다. 롱테이크, 롱뷰을 통해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다. 인물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에 인물을 그대로 녹여 조화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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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온전한 자연 풍경을 담으려 노력한다.

화면 비율 역시 감독에게 온전한 배경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자연스러운 배경을 보여주기 위해 정사각형의 화면에 가까운 화면 비율(1.37 : 1)을 고집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1.85 : 1 비율이 사용된 장면이 하나 있으니, 이는 ‘칠현금’을 온전하게 비추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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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공주’의 칠현금 연주 장면: 영화에서 유일하게 1.85:1 화면이 사용되었다.

다만 이러한 감독의 의도가 낯선 9세기 당나라라는 배경과 다양한 등장인물의 등장으로 처음 보는 관객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호볼호가 명백히 갈릴 영화이나, 좋아하는 이들은 한 번만 보기에는 아쉬워 두번, 세번 보기를 꺼리지 않을 것이다. 처음 영화를 보는 이들이 화면의 아름다움에 반한다면, 두 번, 세 번 볼수록 운명과 인연 사이에서 번뇌하는 여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보다 동화되어 갈 것이다.

2.
스토리와 화면 전개는 느리지만, 주인공의 전투 장면은매우 짧고 사실적이다.

여주인공은 매우 짧은 단검을 사용하는데 이는 사실적인 자객의 모습을 그리는데 유효하다. 대부분의 전투씬은 수 초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짧다. 와이어 액션 같은 과장도 보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이 영화는 “무협 장면이 없는 무협 영화”라고 불릴 정도이다.

“너의 검술은 완벽하구나”

예컨대, 영화 초반부 여주인공은 한번의 칼놀림으로 상대를 암살하며, 이 장면은 수 초에 불과하다. 그리고 스승은 그녀의 검술이 완벽하다고 평가한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부분의 전투 장면은 이렇듯 짧고 간결하다.

한편, 주인공은 딱 한번 긴칼을 사용하는데 이는 본인의 칼이 아닌 상대의 칼을 뺏아 상대의 목을 겨누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는 상대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목적보다는 상대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의 장면이다.

여주인공은 칼의 길이가 짧을수록 자객의 숙명에 가까워지지만 칼이 길어질수록 번뇌하는 인간적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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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은 늘 짧은 칼을 사용한다.

3.
여주인공의 심리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숙명과 번뇌‘일 것이다.

여주인공은 10살 무렵에 ‘가신공주’에게 보내져 13여년 동안 수련을 쌓고 자객으로 변모한다. 그녀의 검술은 완벽에 가까워지나, 살수로서의 길에 대해 끊임없이 망설인다.

(가신공주) “어찌 이리 늦었느냐.”
(설은낭) “그 자의 아이가 귀여워 차마 죽일 수 없었습니다.”
(가신공주) “너의 검술은 완벽하나 마음이 문제로구나.”

온전한 자객으로 키우기 위해 스승은 은낭에게 명령을 내린다. 고향으로 돌아가 과거 은낭의 정혼자였던 그 지역의 수장을 암살하라는 것이다. 살인을 망설이는 여주인공에게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이를 먼저 제거하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녀가 과연 사사로운 인간의 연을 끊고 스승의 명을 받들어 자객이라는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일까?

이 영화를 관통하는 위 질문에 대해 감독은 철저한 리얼리즘을 추구하며, 관객과 소통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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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영화의 스토리를 꿰뚫는 상징물은 ‘거울‘과 ‘옥결(옥으로 만들어 허리에 차는 고리)’이다.

영화의 배경은 9세기 당나라이다. 당시 당나라는 중국 전역을 통일했으나, 힘이 변방까지는 온전히 미치지 못한다. 당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꿈꾸나 반란을 꿈꾸는 이들은 변방 지역에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하북 북부의 노룡, 하북 중부의 성덕, 하북 남부의 위박 대표적인 곳이다. 영화는 3 지역 가장 세력이 강했던위박 배경으로 하고 있다당시 당나라 황제였던 덕종은 위박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딸인가성공주 위박 절도사의 둘째 부인으로 혼인시킨다. ( 은낭의 스승이 가신공주가성공주 쌍둥이 자매로가성공주 함께 위박으로 건너온다.)

‘가성공주’는 자신의 외로움을 난조 이야기에 빗대어 나타낸다.

“계빈 국왕이 난조를 잡았는데 3년 동안 울지 않았다. 부인이 ‘난조는 짝을 만나야 운다고 하는데 어찌 거울을 달아주지 않습니까’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거울을 새장에 넣었는데 거울을 본 난조는 슬피 울고 밤새 춤추고 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섭은낭도 난조였을 것이다. 어렸을 때, ‘가성공주’의 아들인 ‘전계안’과 백년가약을 맺지만, 알수 없는 이유로 그 약속은 깨지고, 10살의 나이에 위박 밖으로 쫓겨나 자객 수련을 한다. 울지 않은 난조처럼 자신도 끊임없이 거울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영화 속 카메라는 은낭의 시선을 비춘다. ‘전계안’이 그의 둘째 부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은낭이 이들을 바라보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들의 대화는 넘실거리는 커튼을 넘어 이루어지고 섭은낭은 이를 엿듣고 있다. ‘전계안’ 역시 난조였음을 그때 은낭도 깨달았을 것이다. 후처인 ‘가성공주’의 아들 ‘전계안’이 정권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은낭보다는 향토 세력의 권력가인 ‘전원’씨와의 혼인이 유리했다.

고향에 돌아온 은낭에게 ‘가성공주’는 옥결을 남긴다. 그 옥결은 ‘가성공주’가 위박으로 올 때, 자신의 아버지인 당 황제가 위박이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라는 의미로 선물한다. 백년가약을 깨뜨린 ‘가성공주’가 옥결을 은낭에게 전한 이유는 아마도 자신을 용서하고 ‘전계안’을 지켜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은낭은 머뭇거리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거울을 마주한 난조는 슬프게 노래를 불렀지만, 13년만에 ‘전계안’을 마주한 은낭은 머뭇거린다. 이내 무엇인가 결심했다는 듯, 그녀가 꺼내든 한마디는 “호희(전계안의 후처)가 임신했습니다”이다. 스승의 명을 어기고, 대신 은낭은 과거의 연인을 지켜주기로 한다.

(섭은낭) “제자 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지금 전계안을 죽이면 후계자의 나이가 어려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가신공주) “검은 무정하니 성인군자의 고민과 번뇌와는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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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으로서의 자신의 숙명을 거부한다.

5.
주인공은 두 번 떠난다. 그리고 그 떠남은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

첫 번째는 10살 무렵 타의에 의해서이다. ‘가성공주’는 은낭에게 자신의 아들과의 혼인을 약조하나, 자신이 후처로 온 까닭에 아들이 왕위를 계승받게 하기 위해서 그유력한 지역 토호 세력인 ‘전원’씨와의 혼인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불편해할 자신의 아들과 여주인공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기 위해 은낭을 자신의 여동생에게 딸려 보낸다. 이 ‘떠남’은 주인공 자신의 주체적 결정이 아닌 타의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객이라는 그녀의 숙명도 그렇게 만들어지지만, 애초에 인연을 중시하는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삶이었다.

영화는 그녀가 일본(당시 왜나라)에서 온 ‘마경소년(거울을 닦는 이)’을 택해 신라로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끝난다. 자객으로서의 자신의 숙명을 내려놓고, 또 다른 인연을 택해 새로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한다. 이후 그녀의 삶이 어떻게 될지 흥미롭다. 그녀는 마경소년과 혼인을 하고 신라를 지나 왜나라로 향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또는 다시 깨달음을 얻고 당나라로 돌아와 보다 큰 뜻을 품은 정치인에게 의탁하여 자신만의 뜻을 펼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삶을 택하건 여주인공은 자신의 숙명을 거슬러 주체적 삶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