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재규 감독의 <역린>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산만하다.

이 영화는 조선 시대 정조가 즉위하고, 1년여 뒤인 1777년 7월 28일에 일어난 ‘정유역변’의 20여시간을 다루고 있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의 즉위 1년 째 어느 날, 그를 시해하고자 하는 청부살수와 이에 맞서는 정조를 다룬다.

하지만, 20시간 벌어지는 일을 전개하는 것 치고는 회상씬이 너무 많아 흐름을 자칫 놓치기 쉽다. 미국 드라마 <24>에서 실시간 흐름이라는 틀을 빌려왔지만, 그 틀이 주는 장점인 역동성은 발휘하는데 실패했다. 그런 까닭에 영화를 보는 많은 이들이 실제 이 영화가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도 다른 이의 평을 통해 알 정도이다.

상당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어야 할 정순왕후의 역할을 맡은 배우는 힘이 없어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의 재미나 구성을 놓고 봤을 때 이 영화의 매력은 반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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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린>은 정조를 시해하고자 하는 ‘청부살수’와 이에 결연히 맞서는 ‘정조’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그리고 있으나, 회상씬이 너무 많아 흐름을 놓치기 쉽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그리는 정조는 눈밭 발자욱처럼 선명하다.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에 배우들의 독백을 통해 인용되는 ‘중용 23장’을 통해 드러난다. 초반부에는 상책(정재영)이 정조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중용23장’을 독백한다면, 후반부에는 정조(현빈)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중용23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중용 23장)

3.
정조는 의로운 이일까? 무모한 이일까?

정조는 즉위 당시, 거대 정치 세력인 ‘노론’과 싸울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당시 다양한 개혁 정책은 철저하게 집권 세력인 ‘노론’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세금 개혁을 위해 ‘대동법’을 강화하고,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기 위한 ‘탕평책’, 그리고 기존의 고문(古文)들을 회복하자는 ‘문체반정’까지 다양한 개혁 정책을 편다.

거대한 기득권 정치 세력과 싸우려는 외롭고 의로운 인물로서 자리매김한 정조. 영화 <역린> 역시 이런 시각으로 정조를 조명한다. 그리고 그 시각의 상징으로서 ‘중용23장’이 인용된다. 변화의 시작은 비록 미약하나 ‘정유역변’에서 살아남고 정적들을 물리치는 이 영화는 변화에 좌절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다.

4.
영화 <역린>은 정조 즉위 후 1년 뒤, 정조의 작은 승리를 축복한다. 영화는 초원에서 외로이 말을 달리는 정조의 모습으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정조의 진짜 삶은 영화 <역린>이 그린 작은 승리 너머에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진짜 정조의 싸움은 오히려 그때부터라고 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정조는 재임기간 동안 수 많은 개혁 정치를 펴고, 왕권을 강화했지만, 정조 사망 이후, 노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의 세력을 더욱 키워나갔다. 결국, 정조의 개혁 정책은 반 쪽짜리 성공에 머문다.

정조의 죽음 이후, 11세에 즉위한 순조를 수렴청정한 이는 정조의 정적이었던 ‘정순왕후 김씨’였다. 정순왕후는 정조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노론’의 핵심 축이다. 이 후, 안동김씨를 주축으로 한 노론의 득세는 더욱 강해지고, 이들은 정부의 요직을 거의 독점한다. 안동 김씨를 주축으로 한 부정부패는 결국 조선 후기 수많은 역사적 과오를 가져왔고, 일본 식민지 시대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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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외로이 말을 달리는 ‘정조’의 모습은 그 이후 그의 외로운 삶을 상징한다.

5.
결국, 정조의 작은 승리를 찬양하는 <역린>은 오히려 이상에 가까울 것이다. 오히려 현실적 맥락을 놓고 본다면 드마라 <한성별곡>의 ‘정조’가 보다 현실적이다. 드라마 <한성별곡>에서 ‘정조’는 자신의 개혁 정치에 다쳐가는 자신 주위의 충신들, 그리고 상처 입는 자신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고뇌한다. 극 중 ‘정조’의 심경을 잘 드러낸 유명한 독백은 매우 유명하다.

“당쟁은 줄지 않고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가 않는다.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에 바쁘다.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이 죽어나가고 내가 꿈꾸던 새로운 조선은 저만치서 다가오질 않는다.

아무리 소름이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난 결코 저들을 이길 수가 없다.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다.

나의 신념은 현실에 조롱 당하고, 나의 꿈은 안타까운 희생을 키워가는데 포기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 (한성별곡 中)

6.
역린(逆鱗)은 용의 턱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하는 의미로, 그것을 건드린 자는 용의 노여움으로 죽음에 이르게 됨을 경고하고 있다. 조선 시대 ‘정조’처럼 ‘노론’에 저항하는 수 많은 이들은 사지로 내몰렸다.

하지만 경이롭게도 변화를 꿈꾸는 이들은 늘 나타났다. 시스템이 고착화되면 될수록 ‘작용과 반작용’에 의해 변화를 꿈꾸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왔다. 변화와 희망을 꿈꾸는 이들에게 정조는 의롭고 용기 있는 롤모델이다.

영화 <역린>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상과 텍스트에 정조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